우연히 발견한 ‘신문보내기 증서‘의 내막
이런 걸 발견했다. 며칠 전 내가 보유하고 있던 근현대사 기록물과 취재수첩을 경상남도기록원에 기증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첩 어딘가에 끼워져 있다가 떨어진 모양이다.
1996년 3월 '경남매일 보내기 확인(영수)서'라고 되어 있는데, 이른바 '신문보내기 증서'다. 즉 어떤 독지가가 사회기부 차원에서 복지시설이나 노인정 등에 신문을 보내고, 그 구독료를 대신 납부해주는 걸 말한다.
발견된 증서에서 신탁자 명의는 '이태일'이라 되어 있고, 겉봉투를 보니 그는 당시 마산에 있던 (지금은 사라진) 기업 한일합섬의 총무부장이다. 구독 부수는 5구좌 다섯 부, 금액은 30만 원으로 적혀 있는 걸 보니 당시 월 구독료는 6000원이었나 보다. 즉, 월 6000원이지만 1년 구독료를 선납하면 1만 2000원을 할인해 6만 원을 받았으니 30만 원은 신문 다섯 부를 보낼 수 있는 금액이었던 것 같다.
증서와 겉봉투의 글씨는 내 필체인데, 이게 왜 이태일 총무부장에게 전달되지 않고 내 수첩에 끼워져 있었을까? 아마도 우편발송 또는 직접 갖다 주려다가 깜빡하고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 여기에 왜 내 글씨체가 적혀 있고, 내가 가지고 있었을까? 그건 한일합성 이태일 총무부장이 기자인 내게 준 돈봉투, 즉 '촌지'를 이렇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촌지를 받지 않는 게 원칙이었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가령, 다른 언론사 기자도 함께 받는 자리에서 나만 유별나게 뿌리치고 나오긴 어려웠다.
물론 그럴 경우 사후에라도 돈을 준 당사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게 맞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돈을 신문사 독자부(당시엔 판매부)에 갖다주고 복지시설 신문보내기 대금으로 처리한 후, 그 증서를 그 당사자에게 보냈던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안 받는 게 가장 최선이겠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는 걸 기록으로 남겨둔다. #촌지 #돈봉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