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생각나는 성동중학교 권재철 선생님
여러분은 스승의 날에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나요? 저는 한 분 있는데요.
제가 중학생일 때였습니다. 부산 문현동에 있는 성동중학교였는데, 몸집이 다소 뚱뚱하고 인상도 푸근한 국어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 시절 학교는 교사의 학생 폭행이 거의 일상이듯 했는데요. 그 선생님은 여느 교사들과 달리 성격이 워낙 좋으셔서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심지어 찡그리는 모습도 보기 힘든 분이셨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을 때리는 일도 없었고요.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딱 한 번 화를 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을 자꾸 무시하며 떠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가장 요란스레 떠들던 아이 세 명을 "너! 너! 그리고 또 너!"라고 지목하며 "뒤에 가서 빗자루 몽둥이 들고 이리 나와!"하고 외쳤습니다.
순간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습니다. 그 선생님의 이런 표정과 말투는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원래 순한 사람이 한 번 화를 내면 더 무섭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지목을 받은 아이들도 겁먹은 표정으로 삐쭉삐쭉 일어나서 빗자루를 들고 교단 앞으로 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교단 앞에 도열하자 선생님의 표정은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예의 눈웃음을 띤 표정으로 도열한 아이들 뒤쪽 교실바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좀 더러운데, 쓸고 들어가라."
일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도 씨익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서서 다시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이들도 더 이상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빗자루 몽둥이를 찾아 교단 앞으로 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선생님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셨던 것입니다. 머리 끝에서 어깨쭉지를 통해 뭔가 찌릿한 것이 내려오는 감동 같은 걸 그 때 느꼈습니다.
그 선생님은 '관용'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국어선생님이었고, 덕분에 제가 이후 국문학을 전공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을 찾아보니 성동중학교 3학년 5반 담임이셨던 권재철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좋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도 왜 지금껏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살았을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