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Jan 07. 2024

1월의 조금은 여유로운 하루

토요일이니까 쉬엄쉬엄 하루를 보내도 괜찮아. 그리고 먹고사니즘과 아빠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하루 종일 눈이 피로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까무룩 낮잠에 들기를 원했는데, 지인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오랜 해외살이로 지인들에게 잊히고 있는데, 가끔 먼저 찾아주는 이가 있다. 그럴 땐 반가움과 고마움이 크다. 밀린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흐른다. 계획이 틀어져 아쉽지만, 새해에 나를 떠올리고 전화를 걸어준 지인의 마음이 더 좋았다.


아침에 다 먹지 못한 밥을 점심으로 먹어서 그런가? 통화가 끝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오후 4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하얀 식빵에 치즈를 듬뿍 얹어 오이와 상추, 파프리카를 곁들여 만든 오픈샌드위치 두 개를 먹었다. 따뜻한 물까지 마셨더니 살짝 불쾌하게 배가 불렀다.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나니 눈의 피로가 다시 거슬렸다. 낮잠이라도 자야 하나? 이 시간에 자면 식구들 저녁 준비하기 정말 귀찮을 텐데... 


결국 식구들 저녁을 미리 해놓고 낮잠을 자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 만들어놓은 포토벨로 버섯 소스를 데워 밥을 넣어 리쪼또를 만들었다. 만사가 버거울 땐 과거의 내가 만든 냉동식품이 최고다. 그에게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고 나는 침대로 향했다. 이것저것을 조금 읽다 아주 달달한 낮잠을 잤다. 밤잠도 낮잠처럼 달콤하면 좋으련만... 밤잠 때문에 낮잠을 참으면 눈이 너무 지치는데, 낮잠을 즐기면 밤잠이 좀 불편하다.


달콤한 낮잠 뒤 그가 부엌에서 저녁을 챙기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미리 저녁을 준비해 놓길 잘했다고 나를 칭찬하는데 배가 고팠다. 어제, 수영장을 다녀오느라 오후 4시에야 점심을 먹었다. 식구들이 저녁을 먹을 때까지 배가 불러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러다 딸을 재우면서 배가 고파 밤 10시가 다 돼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 일이 반복되려는 걸까? 이왕 먹을 거면 일찍 먹는 게 좋겠다 싶어 침대를 벗어났다. 


아이들 점심으로 만들었던 수제비의 남은 국물에 양송이버섯볶음을 넣고 계란을 풀어 끓인 뒤 밥을 말았다. 반찬으론 생선 전 하나와 시금치나물, 얇게 저민 순무김치를 내놨다. 내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식구들은 저녁을 다 먹었다. 그런데 딸이 내 밥을 탐냈다. 생선전을 한입 달라더니 맛있다고 배시시 웃는다. 수제비 국물에 풀어 넣은 계란을 보며 입맛을 다시길래 맛보라고 한 숟가락을 건넸다. 맛있다며 엄지를 척 올리는 딸, 딸의 반응은 늘 크고 풍성하다. 


딸의 반응 때문이었을까? 이번엔 아들이 생선전을 한입 달랬다. 방금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내 저녁을 탐내는데 귀찮다는 생각보단 귀엽다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는 늦게 퇴근한 아빠가 늦은 저녁을 드실 때 밥상머리에서 입을 벌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기새가 어미새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것 같은 아이들의 모습에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겹쳤다. 그때의 아빠의 마음을 아이들 덕에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빠가 보고 싶다. 지금의 아빠도 보고 싶지만 그 시절의 커다랗고 든든하던 아빠가 무척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사 빠진 12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