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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an 15. 2024

겨울철 가족연례행사: 바다 위 걷기

매년 겨울마다 한 번씩 온 가족이 함께 바다 위를 걷고 싶다.

배경이미지: 2024년 1월 7일, 바다 위에서...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상당기간 지속되면 우리 동네 바다는 건너편 섬으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언다. 핀란드 바다는 지형과 기후적인 이유로 염도가 낮다. 그래서 겨울에 잘 언다. 매년 겨울, 일종의 가족 연례행사로, 우리는 바다를 가로질러 걸어서 건너편 섬으로 산책 간다. 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고, 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만이기에 헬싱키에서 더더욱 잘 어는 곳이 아닐까 싶다. 


연말과 연초 영하 15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온 덕에 바다산책을 벼르고 벼르다 1월 7일에 온 가족이 바다 위를 걸었다. 2년 만의 일이었다. 작년 겨울은 예년과 달리 영상과 영하를 왔다 갔다 하던 기온 탓에 바다가 충분히 얼지 못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겨울 연례행사를 한해 건너뛰었다. 올해는 꼭 바다 위를 걷고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섬에 갔다 오고 나니 밀린 숙제를 해낸 듯 후련했다. 게다가 다음날부터 기온이 풀려 한동안 바다산책은 엄두낼 수 없게 되었다.


집 근처 바다는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긴 하나 바다 위는 허허벌판과 다를 게 없다. 바람이 센날 바다 위를 걸으면 상당히 추운데, 지난 7일은 운 좋게도 바람 없는 맑은 날이었다. 예전엔 그와 내가 아이들의 썰매를 끌고 건너던 바다를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썰매를 끌면서 건넜다. 정말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그런데 의외로 바다가 꽝꽝 얼지 않은 흔적이 군데군데 보였다. 하얀 눈 위를 뽀득뽀득한 느낌으로 걸을 수 있어야 안전한데, 질척 질척한 느낌으로 눈이 바닷물에 살짝 녹아서 누런빛을 띠는 부분이 상당했다.


조심성이 많은 그와 핀란드인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나, 그리고 부모와 함께니 다 괜찮을 거라 여기는 아이들 중 안전에 대한 염려는 그의 몫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뛰지 말고 살살 걷고, 뭉쳐 걷지 말라고 충고했다. 한 줄로 나란히 바다를 건넌 우리는 섬 근처 바다 위에서 섬으로 뛰어 올라가 썰매를 타려고 애쓰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직 아이들이 많이 다녀가지 않아서일까? 섬 언덕은 예년과 달리 썰매길이 길들여있지 않았다. 아들은 자신만의 썰매 루트를 개척하려 했고, 딸은 썰매가 나가지 않는다며 징징댔다. 딸에게 약한 그가 결국 섬으로 올라가 딸의 썰매를 밀어줬다. 


썰매 타고 두런두런 대화하던 우리는 함께 모여 그가 보온병에 담아 온 글로기를 나눠마셨다. 글로기는 북유럽 스타일의 뱅쇼다. 원래는 와인에 이런저런 향신료를 넣어 끓이는 것이지만, 우리는 공장에서 잘 만들어진 제품을 산다. 무알콜 제품도 흔해서 아이들도 좋아하는 겨울음료다. 그는 무알콜 글로기만 가져왔다고 아쉬워했다. 난 무알콜 글로기가 더 좋던데... 글로기를 마신 우리는 올 때완 다른 루트로 육지로 돌아왔다. 


처음에 바다 위를 걸었을 땐 무서워서 해변 근처에만 머물렀다. 그와 가족이 되고 나서야 그와 함께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조심스러운 성격의 그가 미리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라 믿었다. 언 바다 위를 걷는 게 익숙해진 뒤론 가끔 혼자 바다를 건너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조심한다. 원치 않는 얼음물세례는 싫으니까... 새삼 그가 참 든든한 사람이다 싶다. 그 덕에 맘 놓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알게 모르게 참 많다. 짝 하나는 정말 잘 찾은 것 같은데, 이 맘이 평생 변치 않기를 소망한다. 


섬에서 돌아오는 길, 바다 위에 아들이 스마일리를 그려줬다. 하트 그려줄지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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