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문 Oct 10. 2018

서로를 바라보던 둘이 다른 방향을 보게 될 때

영화 [스타이즈본] 리뷰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흔히 예전에 듣던 음악을 다시 듣게 되면, 그 음악을 듣던 시기의 특별한 기억이 다시 소환되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음악에 스토리가 입혀지면서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것인데, 굳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냄새나 맛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이러한 작용은 우리의 오감에 사연이 입혀지게 되면, 그것에 대한 감상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음을 반증한다. 오늘 가지고 온 영화 [스타이즈본]은 이러한 서두의 예시에 딱 어울리는 음악 영화이다.


[스타이즈본]과 같은 음악 영화들이 스토리와 각본을 비장의 카드로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음악과 사연, 이야기가 결합되는 시너지가 어마 무시하기 때문에 따로 잘 짜인 각본이 아닌, 영화의 무드를 잡아줄 훌륭한 음악만 필요할 뿐이다. 영화는 락스타인 잭슨(브래들리 쿠퍼)이 가수를 꿈꾸는 앨리(레이디가가)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에게 음악적 성공에 도움을 주지만, 점점 성공 가도를 달리는 여주인공과 다르게 몰락하며 갈등이 생기는 기본적인 서사 구조를 지녔다. 그렇지만 [스타이즈본]은 이야기 곳곳에 적절한 음악을 배치해 서사구조의 단조로움을 전형성이 아닌 안정적이고 친숙한 느낌으로 바꾸어 주었다.


영화 [스타이즈본]의 첫 오프닝 장면

처음 영화의 오프닝을 책임지는 곡 <Black eyes>는 락스타인 잭슨(브래들리 쿠퍼)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준다. 가사 속 ‘And I’m all alone’은 신나는 락 사운드와 함께 많은 관객과 그를 보필하는 매니저, 밴드, 관계자들 속에서도 그가 느끼는 외로움을 관객에게 전달시켜준다.

공연 후 우연히 들린 드랙바(여장남자들의 쇼가 펼쳐지는 술집)에서 샹송을 부르는 앨리(레이디가가)를 본 잭슨은 그녀에게 강한 이끌림을 받는다. 분장실까지 찾아간 잭슨은 자신의 눈썹을 지우고 과장되게 붙인 눈썹(에디드 피에르 분장) 등 그녀를 가린 분장 속에서도 그녀의 진가를 알아본다. 앨리는 수많은 오디션 속에서 들은 외모에 대한 지적들로 인해 위축되어 있지만 잭슨만이 그녀의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말해준다. 앨리가 드랙바에서 부른 <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의 실제 원곡자인 에디트 피에르가 신예였던 이브 몽탕의 진가를 알아보고 이끌어 주었던 것과 함께 생각했을 때, 불러진 장소까지 합쳐져, 잭슨이 앨리의 음악적 재능을 끌어내 줄 것임을 암시하는 멋진 장면이 완성된다.

에디트 피에르(오른 쪽)와 <장밋빛인생>의 뮤즈가 된 이브 몽탕(왼쪽)
감독으로서 훌륭한 것과 별개로 연기도 훌륭했다. [가디언즈오브갤럭시] 속 로켓 목소리 연기와는 완전 다른 중저음 톤으로 락커를 표현해냈다.


이 영화에서 음악 말고도 주목해야 할 지점은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뛰어났다는 점이다. [스타이즈본]의 카메라가 인물들을 보여주는 시선 쇼트가 재미있다. 잭슨이 앨리를 만났을 때, 앨리는 자신이 단점으로 지적받은 큰 코가 콤플렉스라고 하지만 잭슨은 그녀의 코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옆모습을 보이며 손가락으로 이마부터 코를 타고 훑는 것은 둘만의 시그널이 된다. 이 영화에서는 앨리와 잭슨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을 인물들의 옆모습으로 담아내는 것을 찾기 쉽다. 처음 앨리와 잭슨이 드랙바에서 만나는 장면에서는, 유유히 잭슨 쪽으로 걸어와 그의 앞에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노래 부른다. 앨리의 옆모습을 응시하는 잭슨, 그리고 이윽고 앨리가 고개를 돌려 잭슨을 바라본다. 화면은 둘의 얼굴로 가득한 채, 서로를 응시한다. 약물과 알코올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잭슨이 드디어 누군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누군가를 받아들일 마음을 먹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서로의 시선이 마주하는 것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둘은 함께 무대에 올라서도 객석을 바라보며 노래하지 않는다. 둘은 하나의 마이크에 서로 키스할 듯이 붙어 서로를 바라본 채 노래한다. 하지만 행복도, 서로만을 바라보는 것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녀의 재능을 더욱 일으켜야 할 잭슨은 자신의 엔딩 무대에 그녀의 단독 무대를 세운다. 앨리의 첫 단독 무대 곡인 <Always remember us this way>의 가사가 마치 앞으로 둘의 운명이 비극적일 것임을 암시하는 듯, 더욱 구슬프게도 서로의 좋았던 옛 모습을 기억하자며 애써 노력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결국 그 무대를 본 프로듀서이자 매니저인 레즈가 그녀에게 앨범 제의를 하며, 이 일이 갈등의 불씨가 된다.

이후 팝 장르를 부르며 한껏 치장한 채 춤을 추는 앨리를 보며 잭슨은 그녀 답지 않다며 화를 낸다. 분장한 채 샹송을 부르던 앨리의 모습에서도 그녀의 본모습을 볼 수 있던 잭슨의 눈은 점점 어두워져 다른 장르와 다른 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빛나고 있는 앨리를 보려 하지 않는다. snl 무대에서 앨리가 선보인 팝 장르의 곡 <Why did you do that?> 역시 그런 잭슨에 대한 앨리의 마음을 적절하게 녹여낸 곡이다.

관객이 아닌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앨리와 잭슨
더 이상 잭슨을 위해서만 노래하지 않게 된 앨리


잭슨은 과거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한다. 형인 바비가 아버지의 묘가 묻힌 농장을 팔았다는 사실에 격분한 잭슨은 바비에게 고함치지만, 물려준 것이라고는 알코올 중독 밖에 없는 아버지 따위 보다 본인의 뒷수습이나 하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에 화가 난 바비 역시 잭슨을 비난한다. 결국 잭슨은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하며 바비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그의 완충제 역할을 해주던 친형 바비가 그를 떠나고, 형을 대신해주던 앨리 역시 자신의 길을 걷고자 하자 잭슨은 점점 망가져간다. 결국 망가져가던 잭슨은 큰 사건을 치게 되고, 그는 앨리를 위해 중독 치료에 임한다. 치료 후 집으로 오는 길을 데려다주는 형의 차에서 내리며, 형에게 고한다. 내가 되고 싶던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음을 말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동생을 뒤로한 채,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차를 후진하는 바비의 모습에서, 이내까지 카메라를 등지고 있던 바비의 눈시울이 붉어져있음을 보여준다. 위 장면은 그 자체로도 가슴 먹먹해지지만, 왔던 길을 그대로 후진해 나가는 바비의 모습에서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잭슨의 미래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잭슨을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린 바비에게 잭슨은 형은 만들어낼 이야기가 없다며 비난한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잭슨을 추모하며, 그가 쓴 노래인 <I’ll never love again>을 부르는 앨리의 모습이, 둘이 함께 부르던 장면과 오버랩되며 서로의 얼굴 정면을 응시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같은 방향으로는 보지 못했던 두 남녀가 결국 노래로 인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결말인 [스타이즈본]은 음악과 이야기의 결합이 만들어낸 가장 정석적인 음악 영화를 보여준다.

잭슨이 만든 <I'll never love again>을 함께 부르는 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