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의 <나의 덴마크 선생님>을 읽고
길을 잃는 것을 싫어하니?
그 질문의 울림은 오랫동안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p.304
지리산의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저자가 교사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삶의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덴마크의 세계 시민학교로 떠나 다시 배움을 얻는 과정이 수기로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겼다. 저자가 세계 각지에서 온 어린 학생들, 선생님들과 함께 공동의 일상을 보내면서 나누고 배우고 또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생활한다. 40의 나이로 한참 어린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힘에 부치고, 또 자유롭지 못한 언어능력 때문에 '느린 학생'이 되어 힘들기도 했지만 교사였던 저자에게는 훌륭하고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그러니까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덴마크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여행 다녀온 기분이 들기도 해서 좋았다. 난 여행 에세이를 별로 즐기지 않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학교에 온 학생들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만큼 그들이 논의하고 배워가는 주제들은 그야말로 세계적이고 현실적이다. 아무리 세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 사람에게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직접 듣고 또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이점인가. 또 전혀 관심이 없어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는 과정이 참 좋아 보였다. 특히 일본 정부가 많은 역사적 사실을 교과 과정에서 숨기면서 전혀 배운 적이 없어 무지했던 일본 학생들과 위안부 문제를 나누고 이해시키는 과정은 읽는 동안 참 벅찼다. 정말 일본 정부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 그 심각성이 절실히 와닿았다. 실제로 저자는 학기마다 새로 들어온 일본 학생들과 똑같은 과정을 매번 반복해야 했다. 그들은 잘못 알아서 미안해하고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했다. 내가 그 학교에 갔다면 하고 생각해 봤다. 내가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내 무지함이 너무도 아찔했다.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모인 만큼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인식에 대해 공부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조혼과 할례 등으로 잘 알려진 나라에서 온 친구는 초반에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자국의 여성인권을 높게 평가했지만 수업이 끝날 때쯤엔 생각이 바뀌는 부분 말이다. 어쨌든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문화였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들의 문화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는데, 이런 어려움도 모두 모여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그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민주주의와 복지에 관한 교육관은 또 어떻고. 아, 내가 한 공부는 다 뭐지.
어릴 때 나는 굉장히 수동적으로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남은 게 별로 없는 느낌이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과목(수학)이 확정되고 나서부터는 그랬다. 하지만 배움 자체는 좋아해서 지금도 책을 읽을 때 벅찰 때가 있다. 나는 주로 문학을 읽으며 아름다운 문장을 탐미하는 사람이지만, 어려워도 꾸준히, 모자란 역사나 인문사회 책을 읽으며 조금씩이나마 알아가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이 책은 나에게 벅찬 마음을 느끼게 해 준 배움과 나눔의 이야기지만 여행을 다녀온 기분도 들어서 어쩐지 설레고 기분이 환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