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를 읽고.
#책장파먹기
새해가 되자마자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책장파먹기. 책장에 내가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사재낀 책들이 한가득인데 사는 것보다 읽는 게 현저히 느리다 보니 늘 신간에 치여서 잔뜩 밀려버렸다. 아직 두 권 밖에 안 파먹었지만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너무 뿌듯하다. 책장을 가만히 보는데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가 딱 눈에 들어왔다. 그 많은 책 중에서 눈에 딱 들어오는 것 보면 역시 '때'라는 게 있는 거구나 싶다. (사고 나서 바로 읽으면 그런 거 없잖아) 표지가 정말 중국스럽고, 예쁘다. 무엇보다 눈에 확 들어온다. 예전에 매대에 있는 이 책이 서점 갈 때마다 항상 눈에 들어왔는데 중국?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었다.
이 책의 배경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이다. 중국문학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문화대혁명. 지난번에 읽은 <허삼관 매혈기> 이후 또 만난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운동으로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 마오쩌둥의 사상을 실천하는 운동이다. 학교를 폐쇄하며 전통적인 것들과 부르주아적인 것들을 공격했다. 이 책에는 17살의 두 남자아이들이 나온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화자와 '뤄'라는 아이다. 이들 역시 부르주아 지식인의 아들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재교육'이란 것을 받기 위해 강제로 깡시골에 보내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기도 없고 시계라는 것도 본 적 없는 그런 시골.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채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노동을 하며 지내던 중 인근 마을 재봉사의 딸, 바느질하는 어여쁜 소녀를 알게 되고 이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발자크는 대체 무엇인가! 깡시골로 재교육을 받으러 온 아이들 중에 '안경잡이'라 불리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 역시 지식인의 아들로, 문인인 부모를 둔 아이였다. 이 아이가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꾸러미가 있었는데 그 속에 금서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한 아이들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안경잡이' 대신 일을 해주었고 그 대가로 '발자크'의 소설책 한 권을 받는다. 서양에서 들어온 책들은 당연히 모두 금서로 지정되어 불태워 버렸는데 문인의 아들이었던 안경잡이가 몰래 들고 깡시골로 들어온 것이다. 사상서나 전문 학술서 말고는 읽지도 가지지도 못하는 시대에 발자크의 소설은 이 두 아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원래도 재치 있는 이야기꾼들이었던 이들은 안경잡이가 가지고 있던 다른 책들까지 모두 읽으면서 문학에 완전히 빠졌다. 스탕달, 빅토르 위고 같은... 바느질하는 소녀와 사랑을 나누고 있던 뤄는 소녀가 대도시 사람과 같은 지성과 태도를 가지게 되길 바라며 매일매일 책을 읽어준다. 결말은 생략.
이 책을 읽으면서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이 생각났는데 <빨간 책방>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편을 들어보니 이 책의 어떤 장면이 <호밀밭의 파수꾼>과 관련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유.명.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아직 안 읽어봤다는 것 아닌가. ㅠㅠ 이번에 정영목 번역가님이 새로 번역한 개정판이 민음사에서 나와서 유혹당하고 있는 중인데 지금 읽어봐야 할까? 외부의 문물들을 차단하고 정치사상서 말고는 모두 금서로 지정된 상황에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원래부터 깡시골에서 외부의 문화를 전혀 접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그게 뭐 대수일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들은 도시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지식인 부르주아의 자식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 갈증이 더 심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대도시에서 깡시골로 간 그들은 너무 무료했을 것이다. 상황은 암울했지만 위트가 있는 문장이 읽기 좋았고 재밌었다. 책 두께도 두껍지 않아서 좋았다. 모차르트의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장면과 시계와 관련한 장면은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진짜 웃겼다. 내 책장을 바라보면 한숨이 나왔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책장의 책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책장파먹기의 속도를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