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낯설어진 어린 시절로 우리를 초대해 주는 존재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운전대를 못 잡던 어릴 때가 더 좋았었던 것 같아.
그땐 함께 온 세상을 거닐 친구가 있었으니.
제가 자주 흥얼거리는 <신호등>이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은 어릴 때가 더 좋았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나요? 그때를 떠올리면 소소한 놀이에 마음껏 즐거워하며 별거 아닌 것에도 까르르 웃다가, 또 뭐가 그리 속상한지 작은 일에도 툭하면 울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그때의 감정이 오롯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습니다. 그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더라도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웃음 짓고 때로는 상처받았던 경험을 꺼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미화된 어린 시절의 사건과 감정들을 통해 걸러진 것입니다. 과거에 경험한 유사한 감정들과 단절되면 지금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은 어린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부분보다 어른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어린이를 어떤 마음과 눈길로 바라보는지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 곧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오르게 합니다.
청년과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감정일기> 강의가 어느새 초, 중, 고, 학생들과 대학교, 공무원, 교사, 기업까지 폭이 넓어졌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가장 많이 배우는 시간은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넘치는 에너지, 끊이지 않는 호기심, 언제나 앞뒤 없이 갑자기 쏟아내는 기상천외한 질문들로 진땀을 빼고 할 말을 잃을 때도 많았습니다.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제가 어린이라고 상상하며 그들의 시선으로 보고 느끼는 감정에 집중해 본 후 깨달았습니다. 어린이는 낯설어진 어린 시절로 우리를 초대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게 익숙하고, 생소한 감정에 어린 시절을 마음껏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른들의 심정을 이해하듯 자꾸만 감정을 깨워주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그리는 어른을 위한 음악이라고 작곡 의도를 밝힌 슈만의 ‘어린이 정경’,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과 동화책, 어린이 대상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지만 정작 그 속에 숨겨진 심리적 배경은 성인이었던 ‘인사이드 아웃’ 등 어린이의 시선으로 만들었지만, 어른들이 공감하는 것을 보면 더욱 깊고 진한 울림을 전해 줍니다. 영화 '가위손'과 '배트맨',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연출한 팀 버튼 감독은 ‘나의 영감은 어린 시절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동화와 현실 사이를 오가는 그의 작품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어린이처럼 되기 위해 노력할 순 있지만, 어린이들을 어른처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이라고 하루아침에 어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생애 발달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른이 됐습니다. 그러나 어른들도 여전히 좌충우돌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감정표현은 어른들에게 이미 밟고 지나간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보게 합니다. 저는 어린이였던 제 모습을 비춰보면서 다른 어린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어린이들에게 어떤 어른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소통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어른들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게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보호와 교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았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감정일기는 실제 이름과 아이들이 쓴 그대로 실었습니다. 제가 이름은 가명으로 쓰겠다고 했을 때,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이름을 왜 다른 사람 이름으로 써요?”
“책은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도 다 읽을 수 있거든. 그런데 이름이랑 감정일기가 다 밝혀지면 창피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그래서 개인정보는 보호해 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도 그건 그 사람이 쓴 게 아니잖아요. 가짜 이름이잖아요.”
“선생님이 감정일기에서는 솔직한 게 제일 좋다고 했잖아요.”
“감정은 나쁜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맞아요. 제 이름으로 써주세요.”
“저도요! 저도 제 이름으로 써주세요.”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수업할 때마다 ‘솔직함’에 대해 그렇게 강조해 놓고 오히려 아이들을 ‘보호’해 준다는 핑계로 숨으라고 했으니까요. 떳떳하지 못할 게 없는 아이들은 자기 이름으로 써달라며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감정일기 역시 수정하지 않고, 아이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 그대로 실었습니다. 문법이 맞지 않거나 어색한 문장은 수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왠지 아이들의 감정을 훼손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이 읽기엔 아이들의 감정일기가 너무 유치하고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진리는 단순합니다. 진실은 단순하고 거짓은 복잡합니다. 단순할 때 메시지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의 감정일기를 읽으며 느꼈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감정을 이해하면 어린 시절의 나와 잘 지낼 수 있고, 어린이로 남아있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와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생떼를 부려도, 친구와 사소한 다툼을 하고 싸워도, 형제자매에 대한 질투심에 사랑을 갈구해도 모든 게 용인되던 그때를 떠올려 보세요.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회귀가 아니라 작은 행복에 날아갈 듯 기뻐하고 사소한 슬픔에 마음껏 울 수 있었던 자신의 모습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나라는 어린이에게 이제는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혹독한 잣대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른이라면 당연히 견뎌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마음은 곯아갑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버티는 어른들에게 감정일기는 ‘어른’이라는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고 온전히 어린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감정일기를 쓰는 동안만큼은 모든 어른이 철없는 어린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쏟아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내 마음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의 저자 로베르토 리마 네토는 “인간은 성장해야 하기에 영원히 어린이로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겐 의식을 상실하지 않고 다시 어린이처럼 되돌아가는 시간이 한 번쯤 꼭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 보는 것부터 변화는 시작됩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내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도 알게 됩니다.
저는 아이들 감정일기 수업을 하면서 어린이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 그들의 마음과 무의식을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감정의 모든 답은 결국 자신에게 있고 해결도 자기가 해야 하지만, 적어도 어린이들의 감정을 존중해 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 세상의 어린이와 어른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린이가 모두 존중받고 환영받는 소중한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