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조앤 Aug 15. 2021

사과와 함께 / 배영옥

나는 누구인가(Who am I?)

사람의 아들 1964, 르네 마그리트

사과와 함께


                         배영옥 



르네 마그리트의 마그네틱 사과 한 알 현관문에 붙여놓고

나는 날마다 사과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

사과의 허락도 없이 문을 따는 사람

나는 이제 더 이상 과수원집 손녀가 아니고

사과도 이미 그때의 사과가 아닌데

국광, 인도, 홍옥...처럼 조금씩 존재를 잃어가는 사람

플라스틱 사과 한 알/조앤

사과의 고통은 사과가 가장 잘 안다는 할아버지 말씀처럼

그럼에도 매번 피어나는 사과꽃처럼

봄이면 내 어지럼증은 하얗게 만발하곤 하지만

나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한 번도 빨갛게 익어본 적 없는 사람

내가 사과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건

사과의 눈부신 자태 때문이 아니라

사과 이전과 이후의 고통을 배회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나는 날마다 사과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

할아버지도 르네 마그리트도 방문하지 않는 현관문 앞에서

누군가의 기척을 기다리는 사람

한 알의 사과 門 안에서 봄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

그럼에도 사과는 이미 사과꽃을 잊은 지 오래

그럼에도 나는 이미 사과를 잊은 지 오래








나는 누구인가?


뒷마당 도토리나무 그림자에 기대어/ 조앤


내 팔은 나뭇가지가 되어 사과를 따리.

뱀의 유혹이 아니어도

아, 사과의 눈부신 자태,

먹음직도 보암직도 하였으니

나는 덜컥,

저 붉은 사과 한 알을 따리.

그리고

묻지 않고,

나•혼•자

먹으리.

그러니

사과 이전과 이후는

만,

있으리.






*사과는 많은 종교적 전통에서 언급되는데 신비적이고 금지된 과일로 특히 여겨진다. 창세기에는 금지된 과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나와있지 않았는데도 보통 유럽의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브가 아담을 유혹하여 함께 나누어 먹은 과일이 사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사과는 유혹, 죄에 빠짐, 죄 그 자체의 상징이 되었다.< 참조:위키피디아 >


작가의 이전글 안녕을 안경이라 들을 때 / 박지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