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쉽게 층을 지어서 말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층을 세워 말한다는 것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우리는 그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요즘 한국 회사들의 사정은 어떤가 궁금해졌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 (1990년대 중반) 사무실 안쪽 구석에 탕비실이 있었다. 거기서 커피를 자주 탔다. 조촐한 직원들 생일 준비도 거기서 했다. 나는 여직원이 많은 직장을 다녔다. 여직원이 많아서 돌아가며 탕비실 일을 분담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 커피와 관련한 일들에 부정적인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 계속 그 일을 해야 했다면, 내 할 일이 밀려 있었다면, 왜 나만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자주 물었다면,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커피처럼 개인 취향의 음료를 각자 주문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우르르 주문서 하나에 모아서 주문한다는 것, 한 사람이 모두를 대신하여 한꺼번에 계산한다는 것, 거기에 주문을 가능하면 한두 가지로 통일하자고 무언의 압력을 주는 것은 한국 사람들만의 독특함이라는 것을 미국 회사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특히 알레르기와 지방 성분에 민감한 미국은 이에 걸맞은 여러 종류의 우유를 내놓았는데, 2%, whole, non fat milk와 아몬드, 코코넛, 소이 밀크 그리고 heavy cream과 half&half까지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우유였다. 미국 사람들은 거의 다른 우유를 선택하기 때문에 여러 잔의 커피를 만들 때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이런 다양함 속에 한국 손님들은 아메리카노로 통일하자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나 한두 사람이 주문을 할 경우에는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고 요구했지만 여러 명이 같이 와서 주문을 할 경우에는 개인의 취향은 항상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이러한 독특함은 물론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그 문화적 배경은 함께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 이야기를 갖고 있기 마련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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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주문한 커피는 역시나 8잔이 같은 종류였다. 그런데 왜 여기서 <제가 오십인데요>라고 했을까. 커피 심부름 내지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할 경우 나이 오십이 많다는 것인가 적다는 것인가? 혹 남자 여자 구분까지 나갈 참이었던가? 사실 내가 이 말을 무심히 들었을 땐 순간 그보다는 어려 보이다가 좋을지, 에이, 그렇게 안 보인다가 좋을지 두 문장 중 하나를 고르려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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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각자 와서 사는 것이 먼저다. 우리가 잘 쓰는 말 중 하나, 오는 김에 가는 김에 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것은 굉장한 부탁이다. 듣는 쪽에서는 안 들어주기 정말 애매한. 가능하면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여덟 잔의 커피는 어떤 경유를 거쳤는지 나는 모른다. 그 팀에서 그의 나이가 가장 어린 나이였는지, 그가 오늘 커피를 쏘아야 할 차례였는지, 그는 항상 커피를 아침에 사야 하는 사람이라 알려져서 가는 김에 사 오라는 부탁을 받은 것인지, 오히려 오늘은 내가 사겠다 했으면서 구시렁거렸던 것인지. 그것도 아님 윗사람의 압력 아닌 압력이었는지. 어쩌면 커피 심부름을 차마 같은 팀 미국 사람에게는 시킬 수 없어서 자원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이든 그는 달갑지 않았다. 흔쾌한 예스가 아니었다. 그저 귀찮은 심부름이었다. 심부름은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달갑지도 않고, 항상 흔쾌하지도 않으며 거기다 좋지도 않은 심부름 같은 것은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피치 못할 경우는 늘 생기기 마련이니 그럴 때는 어린 사람, 부하직원, 여자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가는 김에 오는 김에 라는 말도. 커피가 모두에게 같은 시간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모두가 일하는 시간이니 그것도 나누어서 해야 하는 업무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그가 위태롭게 8잔의 커피를 들고 카페를 나가자 두 문장 중에서 하나를 고르려던 나는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