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를 되돌아보자면 유난히 힘들었고 또 벅차게 행복했고, 좋은 결과물도 많았기 때문에 밀도 있는 한 해를 보냈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12월 한 달은 글을 쓰느라 몰입하면서 괴롭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치 글쓰기의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로마로 가는 길> 1차 퇴고 원고 마감으로 예민해졌고, 내가 다양하게 벌려놓은 일 때문에 남편이 고생을 좀 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발전적인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글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고, 남편은 창작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쓴지는 거의 10년 차가 되었지만 긴 호흡의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코로나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봉쇄로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되자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긴 호흡의 글을 썼고, 출간을 하게 되면서 작가라는 묵직한 이름이 생기게 된 것이다. 취미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글쓰기에 덜컥 발을 들여놓았으나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당위성 또는 목적성이 없으면 특히 글쓰기는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누가 쓰라고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니고 돈을 쥐어주는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부끄럽지만 누군가가 떠밀어야만 계속해서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몰아넣기 위해 '매거진 기고'와 '유료 콘텐츠 제작'을 무작정 시작해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속해서 쓰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 브릭스 매거진 <시칠리아 한 달 살기> 연재
2.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이태리부부의 이탈리안 라이프>
위 두 가지였고, 더불어
3. 이탈리아 성지순례길 <로마로 가는 길> 퇴고
4. 어쩌면 세 번째 책이 될지도 모르는 <팬데믹 이후의 이탈리아 여행기> 투고를 위한 초고 쓰기
까지 네 가지 프로젝트를 하느라 정신없이 글을 쓰는 한 달을 보냈다. 이렇게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몰아넣고 나니 불어오는 바람과 구름의 색깔, 비 냄새까지 전혀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다. 더불어 잘 써야만 하는 글을 한 달 동안 써보고 느낀 점은 목적성이 있는 글을 쓸 때는 저절로 궁둥이를 붙여 몰입하게 된다는 거다. 내가 마치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처럼 그 역할 자체에도 몰입하게 되고 아침저녁으로 심지어 꿈에서 까지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백수 주부로 오래 지냈던 나에게는 꽤나 짜릿했고, 지속하고 싶은 긍정적인 신호이자 스트레스였다. 매일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작가'라는 어쩌면 허울 좋은 명함을 놓고 싶지 않다. 그냥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매일' 쓰는 사람부터 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