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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Aug 05. 2024

[엣세이]그래 결심했어!

옛날 예능 '테마게임'을 떠올리며...

1995년 추운 봄... 대학 캠퍼스

문민정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휩쓸고 간 대학 캠퍼스는 보수와 진보가 미완의 혁명처럼 혼란스럽게 엉켜있다.


줄줄 내려오는 힙합용 통 큰 바지를 입은 새내기들과  

예전 입었던 교련 바지를 기어코 입은 복학생들...


민족, 자주, 통일 이란 단어가 대운동장 계단에 시뻘겋게 쓰여있고,

그 계단 밑에는 빨간색 말보로 담배꽁초는 여기저기 버려져있다.


운동권 출정식에는 민중가요패 '희망새'의 한복이 나부끼고...

카세트테이프 노점에서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흘로 나오고 있다.


참 아이러니 하지만 기묘하게 시대가 변화하고 있었다.


4월이 지나자 새내기 95학번 나는 대학생활이 너무 무료해졌다.

수업은 안가기 일쑤고 대학을 관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게 염색한 사자머리에 킬힐을 신고 무언가 재미난 일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이때 갈림길에 걸려있는 두 개의 현수막을 보았다.


한 현수막에는 '열정과 감동'의 연극동아리 '숭맥'에서 신입단원을 모집하고 있고,

다른 현수막에는 '하나의 진리, 천의 실천'의 대학신문사에서 수습기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두 개의 모집은 완전 다른 성격이었지만 이상하게 모두 관심이 갔다.


두 개 다 가입하기는 부담스럽고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킬힐 덕분에 발이 너무 아파서 그나마 그 자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학신문사로 나도 모르게 걸어갔다.


운명의 시작이다.

옛날 예능 프로그램인 김국진, 이휘재 등이 출연한 '테마게임'은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다.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친 후 상황을 선택하게 되는데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대학신문사를  '테마게임'의 주인공처럼 단순하게 발이 아파서 선택했었는데,

그 선택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학생기자로서 5.18 특별법 투쟁, 범민족대회, 연세대 통일 투쟁을 거치게 되었고,

편집국장을 맡으면서 시대변혁을 하고자(?) 자연스레 시민사회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선택을 신중하게 할까?

지금 돌아보니 인생이 마치 '테마게임' 같은 가벼운 예능 같다.

한순간의  고민 없는 선택으로 많은 것이 좌지우지 되다니 웬지 좀 씁쓸하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서... 일분일초의 고민도 없이 무심히 내린 결정 때문에... 텔레비전에 순간 지나갔던 장면 때문에... 운명을 바꾸는 선택을 한다.


무대에 서고 싶다

다시 '테마게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연극동아리 '숭맥'을 선택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마 연극, 뮤지컬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에 나가지 않았을까? 상상은 자유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노래도 곧잘 부르고 춤도 잘 추는 편이다.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 무대에 서고 싶다.

연기도 잘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무대는 아니지만 무대이다.

현재는 강연자로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이 일도 오래 하니 지치고 지겨워졌지만 언젠가부터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이 연단도 무대라 생각하고 즐기면 돼!


오늘도 강연용 노트북을 넣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거리에 나서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거리는 나의 무대가 된다.

영화 '비긴어게인'의 싱어송라이터 그레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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