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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홍 Jan 23. 2023

똥냄새 맡으며 일어나 만좌모 다녀온 썰

오키나와 여행기 6 

230102

'뿌지직' 소리에 눈을 떴다.


첫날밤 료칸에 '영끌'하고, 나머지 숙소들은 '가성비'를 따져 묵기로 한 우리.

밤늦게 술을 먹고 돌아와도 바로 쓰러져 잘 수 있도록, 오로지 위치만을 따져 선정한 이날 숙소는 화장실과 침실이 일체형이나 다름없는 아주 귀여운 크기의 호텔이었다. (차탄의 컴포트플러스)


"누가 아침부터 똥 싸는 소리로 잠 깨게 하냐…!"


신경질을 내자 물을 내린 신랑이 춤을 추며 걸어 나왔다.


"여 마아아 아~ 케미컬 하입 보이~"


시원하다는 듯 춤을 추며 궁둥이를 흔들어댄다.


솔직히 좀 귀엽다.

누군가 사랑의 끝은 귀여움이라더니, 귀여움엔 답이 없다.

더러워도 귀엽고, 통통해도 귀엽고, 못생겨도 귀엽다. 그 어떤 난장에도 '귀여워' 이 한 마디면 다 용서되는 것이다.


신혼 초반, 귀엽다는 콩깍지라도 끼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구린내와 헛웃음으로 여행 3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가성비 숙소에 조식이란 없다.

전날 밤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사 온 빵들로 아침을 해결.


초코 롤케이크는 폭신폭신 보드라우니 아주 맛있었고, 궁금해서 사본 멜론빵은 퍽퍽해서 별로였다. 나도 오늘 저녁엔 화장실을 갈 수 있길 기원하며 요거트와 커피를 후루룩 퍼먹었다. 그래도 일본 오면 편의점 탐험은 국룰이라고.


체크아웃을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조심스레 말을 건다. 수줍게 "저도 5월에 한국에 놀러 가요"라고 하시더라.

가까워진 한일관계의 증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라, 즐거운 한국 여행하시라고 진심을 담아 말씀드리고 나왔다.




어느덧 익숙해진 3일 차 일본의 좌측통행.

오늘은 어렵게 빌린 렌터카를 뽕 뽑는 날이자 이번 오키나와 여행의 하이라이트, 북부를 한 바퀴 쭉 돌 예정이다.


만좌모-츄라우미수족관-코우리대교-나하로 복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

(다만 놀다 보니 날이 어두워졌고 날씨도 그닥이라 결국 코우리대교는 못갔다.)



먼저 차탄에서 30분을 달려 만좌모에 도착했다. 입장료 인당 100엔.


코끼리 모양의 절벽으로, 류큐왕국의 어느 왕이 '만 명이 앉을 수 있는 들판'이라고 한 것을 계기로 '만좌모(万座毛)'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확실히 생긴 게 코끼리 코 같긴 하더라. 다만 해당 돌 위 들판에는 진입할 수 없었고, 맞은편에서 바라봐야 했다.


내부는 솔직히 5분 컷이었다. 뻥 뚫린 전경에 속이 시원해지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제주도 섭지코지가 더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꼭 신랑에게 길을 물어본다. 여기서도 그랬다. 

아무래도 외모가 일본 사람처럼 생겼나 보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남편의 반응이다. 1도 못 알아듣는 일본어로 질문이 들어오면, 꼭 두 손을 모아 공손한 자세로 이렇게 답변하는 것이다.


"스미마셍. 와타시와 간코쿠진데스."

(죄송합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러면 질문했던 일본인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간다.

'쏘리, 아임 코리안' 하면 될 것을 왜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답변을 하는지. 질문한 일본인에 대한 예의라나.


역시 귀엽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인증샷 한 방 찍고 다음 목적지로 고고~




북부로 향하는 길, 츄라우미 수족관 표를 할인된 가격으로 판다는 '코다 휴게소'에 들렀다.


한국인들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일 텐데. 어쩜 영어 안내판이 하나도 없었다. 까막눈인 우리는 어디서 표를 사야 하는 건지 한참을 헤맸다.


결국 내부 계산대 한 켠에서 수족관 그림을 발견하고 어찌저찌 티켓을 겟. 정가보다 2500엔 정도 더 싸게 사기에 성공했다.


나오는 길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튀김집이 있었다. 부실한 아침식사로 슬슬 허기가 지던 차에 우리도 인파에 합류해 줄을 섰다.



오징어와 고구마, 게살, 해조류 등 갓 나온 튀김들을 봉지에 담아 담아~ 차에 들어와 한입 베어 물은 그 순간!


와- 짱맛! 이날 여기서 먹은 튀김이 오키나와 여행 전체에서 먹은 음식들 중 제일 맛있었다. 별 다섯 개.

보들보들 해산물이 얇은 튀김옷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규. 앉은 자리에서 튀김 5개를 다 먹어버렸다.


혹시라도 코다휴게소 가시는 분들은 휴게소 오른편에 위치한 튀김집 꼭 들리세요.

이름은? 일본어 알못이라 모르겠다.. 그냥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곳.



감동의 튀김을 뒤로하고 이제 휴게소를 떠나 또 다른 맛집을 향해 출발해볼까.


"아- 길 잘 못들었넹~"


고속도로 반대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진입에 실패해 버렸다.


한순간의 실수로 네비 속 도착 예상시간이 30분이 더 늘어났다.

한국어가 미숙한 이곳 네비는 "약 200미터 앞 우회전입니다"에서 "약" 발음을 못해서


"야! 200미터 앞 우회전입니다."


꼭 반말로 잠을 깨웠다. 그런데 이 반말을 추가로 30분 더 듣게 생긴 것이다.

휴게소 구매를 통해 아낀 수족관 티켓비 2500엔은 하이패스 톨비와 왕복 기름값으로 날리게 생겼다.


휴, 뭐 어쩌겠어.

오키나와 최고의 튀김을 만났고, 내 남편은 그냥 귀엽다니깐.


귀엽게 태어난 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라 정말!


삐져나온 그의 뱃살을 꼬집으며 파란 바다가 넘실대는 북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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