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고민만 하고 제대로 된 번역은 하지 않는 이야기.
내사 무슨 낫짝으로 미역국을 먹겟능기요. 담뇨 안 새덱은 '건국동'이나 낫지만... 아이유 웬수 놈의 씨....
근대 한국사를 공부했었기에 간혹 옛날이야기가 궁금할 때면 오래된 소설들을 찾아본다. 오늘은 월북한 작가인 엄흥섭의 「귀환일기」를 살짝 읽어보았다.
1942년에 순이와 영히는 여자정신대라는 미명 아래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탄약을 만드는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아파도 치료도 해주지 않고 기계처럼 일만 하던 둘은 다른 동료들 몇몇과 함께 탈출을 하지만 웬 형사에게 잡혀 취조를 당한다. 하지만 이 형사는 가짜 형사였고, 그에게 속은 순이와 영히는 술집 작부로 팔려가게 된다. 그러다가 1945년 임신 9개월인 순이와 영희는 다른 한국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가는데...
위의 대사는 "대구 여인"으로 불리는 또 하나의 임산부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아이를 낳고 하는 말이다.
첫 단어부터 걸린다... 내사라니...
내가,의 사투리가 확실한 것 같아 찾아보니 경상도 사투리란다. 말하는 사람이 대구 여인이니 찾아보지 않았어도 이 정도는 충분히 유추할 수 있긴 하다.
근데, 사투리는 어떻게 번역해야 한단 말인가? 사투리는 번역이 불가능하다. 한 언어의 사투리가 상기시키는 지역적 특색과 이미지 등은 다른 언어와 같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우선 이 문제는 차치하고. 모두 표준어로 번역하기로 한다.
"내가 무슨 낯짝으로 미역국을 먹겠어요. 담요 안 새댁은 건국동이나 낳았지만... 아이유, 웬수 놈의 씨..."
"How could I have seaweed soup? The young wife wrapped in a blanket bore a Korean boy, but... Ugh, the seed of an enemy."
미친듯한 직역이다.
처음 번역을 할 때는 보통 제대로 직역을 하게 된다.
내가 무슨 낯짝으로... 저건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How dare I have seaweed soup?
I'm too ashamed to have seaweed soup.
How could I possibly have seaweed soup?
I would be a shameless hussy to have seaweed soup.
미역국은 seaweed soup으로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고유명사 처리를 할까? Miyeokkuk? Miyeok soup?
Seaweed는 아무리 들어도 먹고 싶지 않단 말이다.
건국동은? Country-founding boy? 한국어로는 저리 간단한데 영어로는 어떡하지?
실은 해방 직후에 태어난 아이를 뜻하는 거니까 Liberation boy로 해도 될 것 같긴 한데... Astro Boy(아톰)도 아니고 Liberation Boy라니, 해방시켜주는 어린 슈퍼히어로 같기도 하고.
웬수는 또 어떡하나. 일본 사람의 아이라는 걸 알려주는 동시에 키우자니 못하겠고 버리자니 열 달 배불러 낳아놓은 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여인의 심정을 한꺼번에 알려주는 단어인데, 이런 웬수 같은 단어가 있나 ㅠㅠ
"How could I possibly have seaweed soup? The young woman inside gave birth to a Korean boy, but me... Ugh, it's an enemy's seed."
이렇게 오늘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어쩔 수 없다.
엄청난 엉터리 번역을 해놓고 나중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겠다 마음먹으며 은근슬쩍 마무리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