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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희 May 28. 2022

사람이 미울 때

요즘처럼 사랑과 응원을 주고받는 데 무능했던 적이 없다. 이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까. 부디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만큼은 잃지 않기를.




처음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해서 펑펑 운 것도,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해 아쉬운 것도. 그쯤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사는 게 환멸 나고 고단해도 OO을 만나면 당신이 보여주는 마음이 소중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관계를 쌓고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세상엔 아름다운 것이 훨씬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괜찮다.


한 번은 동료가 Nevertheless, She persisted 라고 적힌 엽서를 선물해주었다. 엽서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가 어떤 일, 어떤 의제, 어떤 공간을 기점으로 두고 있든 간에 곁에서 좋은 동료로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늘 제게 응원과 격려, 애정과 좋은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을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소희 님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줘요. 망설임 없이 마음을 보탤게요.


기쁨을 얻는 원천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알아가고 그와 우정을 쌓고,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으며 기쁨을 얻는다. 관계든 일이든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헤아리며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경험은 언제나 작동하는 행복의 법칙. 이 경험을 갈망하고 구하며, 다시 겪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람을 깊게 알게 되고, 그의 면면을 내가 가까이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강하게 기뻤던 적이 있었다. 그때 느낀 감정이 너무나 강렬해서 내가 언제 행복한지 쉽게 깨달았다. 나는 그 또는 그녀가 내 인생에 등장한 것이 감사할 때, 그리고 그 사람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게 행복감을 느낄 때야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었다. 상대가 선의로 보여준 시선과 풍경을 내가 감각하는 만큼, 그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수용하려고 노력한 만큼 나도 행복했던 것 같다.


상황이 늘 좋지만은 않아서 심적으로 의지하거나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미운 마음이 쌓이면, 고통스럽고 괴롭다. 그리고 괴로운 만큼 포기하고 싶어 진다. 이때 나를 붙잡는 게 중요하다. 관계의 다음을 상상할 수 없을 때, 회피하고 싶을 때, 의도적으로 상대가 보여준 새로운 세상, 나 혼자서는 가닿지 못했던 감정과 함께한 시간으로 얻은 배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 조금 밸런스가 맞는 기분이다.


찬 바람이 완전히 가시기 전에, 두 번째 사업을 시작하는 대표님을 만났다. 그는 사업에서 배운 한 가지가 감사함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잘 될 것 같았던 사업이 예상치 못하게 기울자, 가까운 사람들도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대표로서 그 순간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쨌거나 살 방도를 찾아야 했으니까 흩어졌다. 사업을 정리하고 시간을 가지며 깨달았던 건,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그런 이기적인 존재가 기꺼이 나라는 사람을 돕고 함께했다는 사실이었다고 했다. 때때로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돕는 사람들이 의아해서 이유를 물었다고 했다. 그때 돌아온 답은 당신이 잘 되면 좋겠다, 돕고 싶다,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 였다고. 그런 마음을 받았던 순간이 기적이었고, 그런 순간을 받으며 여기까지 온 거라 최종적으로 남은 감정은 감사함이라고 했다. 내가 그 마음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게도 기적 같은 순간들이 있다. 사람이 미워질 때는 그 마음을 받았던 때로 돌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고, 논리적이지 못 하더라도 그 마음을 받았던 때로 돌아가면, 그런 마음을 줄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면 괜찮다.


동요 없는 사람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희로애락 버거워 모든  지겹다각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일을 계기로, 계속해서 선의로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들과 고유한 관계를 맺어갈  있다고 생각하면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나는 내일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최선을 보겠지. 그럼 한심한 짓을 하다가도  최선에 맞는 대우를 하자고 결심하게 된다. 미워하지 말고 그 사람이 알게 해준 그 세상을 기억하자고. 여기까지 온 것처럼 함께 멀리 갈 수 있다고 믿자고. 이왕 선택할 거라면 계속 실패하더라도 언제든 사랑을 주는 쪽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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