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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Feb 05. 2021

폴짝이고 싶다

더 격렬하게

욕조시공 기사님이 다녀가셨다. 13년된 아파트라 하나하나 고칠것이 늘던 차에 욕조도 그 타겟이 되었다.

남편은 평소 욕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단다. 마치 방같은, 아늑하고 깨끗한 욕실이라나.

그런데 그런 그의 레이더에 욕조의 녹자국 같은 것이 들어왔다. 한동안 갖은 셀프 청소법을 찾아가며 제거를 시도하더니 결국은 욕조를 통째로 바꾸어야겠다고 했다.

처음 녹자국이 발견된 후로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거의 8개월이 지나있었다.
그러게 애초에 이사올때 욕실을 통째로 갈아엎었어야한다는 말이 하고 싶어 혓바닥이 들썩였지만, 돈쓰는데 소심한 그의 용기가 가상해 암말 않고 동의했다.

시공기사님은 욕조를 들어낸 자리에 물이 흥건하다고, 방수시공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 인(테리어)알못인 내가 봐도 짐짓 멀쩡?해보였던 욕조 아래의 모습은 개판이어서 순순히 방수시공을 하겠노라고 했다.

방수시공이 완료된 모습은 시멘트 같은 게 매끈하게 발려진 상태로 보였다.
기사님은 그걸 절대 건드리면 안된다고 했다. 3일동안은 안방화장실 출입 자체를 금하라고 하셨다. 물한방울이 튀어도 구멍이 쏙 생긴다고. 그리고 우리집 세 꾸러기들을 훝어보시더니 아이들이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다시 한번 주의를 주셨다. 내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노라고 대답한 후에야 기사님은 돌아가셨다.

기사님이 가신 후 나는 다시 안방화장실 문앞에 서서 방수시공된 곳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둘째가 옆에서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기사님이 내게 했듯 나 역시 짐짓 상기된 얼굴로 둘째에게 절대 들어가선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안방화장실에서 돌아나오는 내머릿속에 어떤 영상이 스쳤다. 잠시 잠깐이긴 했지만, 저 시멘트같이 생긴것이 굳지 않은 채 촉촉하게 발린 위를 장화를 신고 폴짝폴짝 첨벙첨벙 뛰는 내 모습이...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대관절 왜!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싶었다. 그럼에도 생각을 떨치기보다는 좀더 이어나가 보았다.

절대 하지 말라는 것, 할 수야 있지만 결국 내 손해가 되기에 일부러 할 이유가 없는 것. 그걸 해버린다면? 그냥 실수로 물튀기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미친년처럼 그 위에 발자국을 왕창 찍는다면? 그걸보는 애들의 얼굴과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의 얼굴, 그리고 3일 뒤 방문한 기사님의 얼굴이 샤사삭 지나갔다.

내가 미친건가? 왜 이런 충동이 일는 거지?
호기심이라던가, 장난 따위의 들은 우리집에 사는 남자아이 셋이 가진 것만으로도 진작에 1가구당 총량을 초과했다. 하여, 나와 남편 몫의 것은 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고, 퇴근하고 돌아 온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물었다.
"여보, 여보도 가끔 그런 생각 해?"
"무슨?"
"저기 공사해놓은 곳에서 뛰는 생각 같은 거."
"?"
부연 설명을 좀 하고 나서야 남편의 놀란 얼굴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큭큭. 시간맞춰 어디를 가다 다른길로 빠져버리는 생각 종종 해. 실수가 아니라 자의로. 나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 이해가 안갈 표정을 지을거라 생각하면서"
"큭큭큭큭큭"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저 인간의 바보같은 생각에 웃음이 터졌다. 남편도 내가 폴짝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남편과 나는 실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아직 피터팬을 만날 수 있는 티켓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

세 개구쟁이들이 잠들고 두 개구쟁이들이 남아 킬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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