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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5. 2020

수상한 흥신소

[박상은 스토리 ④] "최 일병을 찾아서...집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

박상은씨는 담배 한 개비 물었다.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던 그였기에 그 모습이 생소했다.



"담배 안 태우시잖아요."


"안 태웠지. 근데 요새 하도 기분이 그러니까 다시 담배를 잡게 되더라고. 오늘은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안정제를 2개나 먹었다니까."


             


▲  지난 24일 박상은씨가 담배를 꺼내 들었다. "요새 하도 기분이 그러니까 다시 담배를 잡게 되더라고. 오늘은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안정제를 2개나 먹었다니까."

ⓒ 변상철

 


담배를 연신 물고 숨을 들이쉬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고 긴장되어 보인다. 왜 안 그러겠는가. 그가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을 생각하면 담배가 아닌 더한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가 오늘(24일) 서울 회기역에 와 있는 이유는 지난 1월 9일 서부지원에서 열린 재심개시결정을 위한 공판 때문이다.



이날 공판에서 판사는 박상은씨의 군사법원 기록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당시의 판결문만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핵심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참고인의 진술이나 고문을 입증할 수 있는 여타의 증거를 더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 범죄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신청인이 찾아서 제출하라는 취지였다.



정보를 가진 국가가 정보를 가져오라는 역설


이것은 민간인 개인에게 사실상 재심을 포기하라는 말일 수도 있다. 범죄를 저지른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신청하려 하는데, 정보의 공개 권한을 가진 국가로부터 정보를 얻어 오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애초 개인이 재심 재판을 여는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 싸움이라는 것은 각오했으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험했다.



우리는 법원에 최초 박상은을 검거했다는 일병 최○○의 주소지 '사실확인서'를 내보기로 했다. 다행히 법원은 필요성을 인정하여 최○○의 주소지를 확인해 주었다. 이제 최○○을 찾아가 그들에게 진실을 듣는 것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증언을 부탁하기 위해 이른 아침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이라 어디 출근했으면 못 만나겠네?"


"그럼 혹시 집에 안 계실 수도 있으니 최○○씨에게 꼭 좀 만나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손을 직접 써서 전달해 보면 어떨까요?"



박상은씨는 그게 좋겠다고 하며 근처 카페에 들어가 노트에 직접 호소의 편지를 작성했다. 그 편지에는 50년 전의 일로 억울한 삶을 살았던 그의 한을 풀고 싶다고,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으로 꼭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두 장짜리 편지를 근처 마트에서 구입한 편지봉투에 정성스럽게 넣었다.



최 일병을 찾아서


             

▲  박상은씨는 자신의 50년 한을 풀기 위해, 결백을 증언해줄 최○○을 찾아 회기역으로 갔다.

ⓒ 변상철


 


그리고 회기역 입구에서 딸기 2팩을 사서 최○○의 집을 향해 걸었다. 걷는 동안 그렇게 말 많던 박씨는 말이 없었다. 수많은 빌라가 있는 동네 한가운데를 걸어가다 보니 전동2동 파출소 앞에 다다랐다.



"이 집이에요."



가지고 온 주소를 확인하며 걷다 최○○의 집에 다다랐다. 4층 건물의 오래된 빌라였다.



"이 집인가?"



박씨는 잠시 큰 숨을 들이쉬고 빌라 현관문을 밀었다. 최○○의 거주지인 3층에 다다르고 나니 더욱 긴장되었다. 잠깐 숨을 고르고 나서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다시 누르려고 하니 집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안에서 들리는 중년의 남자 목소리, 남자가 있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문 좀 열어주실 수 있어요?"



"누구신데 그러시냐?"라고 하며 문이 열렸다.



"저 박상은이라고 하는데 최○○씨 맞아요?"


"최○○은 맞는데 누구신데 찾아오셨어요?"



"실례인 줄은 알지만 좀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요? 예전 군대 생활 때 저 만났거든요."


"아, 그래요? 들어오세요."



최○○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우리 일행을 안으로 들였다. 부엌에서는 부인인 듯 보이는 사람이 막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가 낯선 일행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거실에 마주앉아 서로 인사를 했다. 그동안 최○○의 아내는 커피를 내놓으며 곁에 앉았다. 우리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과거 사건발생부터 현재 재심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한참을 듣고 있던 그가 별다른 동요 없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고생 많으셨겠네요. 그래,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요?"



희망의 빛줄기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죠?"

             


▲  "묶기는 뭘 묶어요. 길 잃었다는데 뭘 묶어요. 아, 법정에 들어가니까 사실대로 말을 할 틈이 없더라고요." 마침내 찾은 최씨의 말에서 박상은씨는 재심 개시의 희망을 봤다.

ⓒ 권우성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증언을 해줄 수 있는가 해서 그걸 부탁하러 온 거요. 내가 북한으로 탈출하려다 당신에게 검거된 것이 아니잖소?"



박씨의 이 말에 최○○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최 "검거는 무슨... 내가 보초근무 서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길래 깜짝 놀라서 문을 열어줬던 것은 확실해요. 이제 보니 조금씩 기억나네. 여기 이 사람이 서 있었어. 그래서 초소로 들였지. 그리고 뭐 어디 가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길을 물어봤던 것 같아. 내가 충청도 단양 사람이니 어디가 어딘지 나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옆에 내무반으로 이 사람을 데려갔지. 데려가니까 고참들이 잠에서 깨고 그랬지. 그래서 고참들한테 자초지종 이야기 하고 이 사람을 내무반에 앉아 쉬게 했어."



박 "그때 날 밧줄로 묶거나 수갑을 채우거나 하지도 않았죠?"



최 "묶기는 뭘 묶어요. 자유롭게 앉게 해줬는데. 길 잃었다는데 뭘 묶어요. 내무반에 앉혀 놓고 난 다시 초소로 근무하러 나왔어요. 그게 다예요."



박 "그때 내가 보안대에 끌려가서 얼마나 맞았나 몰라요. 정말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니까."



최 "나도 그 후에 사단 보안대에 1, 2번 끌려갔었어요. 가서 보안대 수사관들이 묻는대로 예, 예 대답했죠. 예전에는 보안대 수사관들 앞에서 부인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얼마나 무서운데. 그냥 예, 예 했죠. 그리고 나중에 서울 필동에 있는 법원에도 갔었어요."



박 "맞아요. 그때 나 본 기억 나요? 법원 복도에서 나 만났을 때 웃으면서 했던 말 기억나요? '사실대로 말할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 아주 환하게 웃으면서 나한테 그랬다니까. 근데 나중에 보니까 날 검거했다고 진술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최 "아, 법정에 들어가니까 검사, 판사가 나한테 질문을 하는데 묻는 대로 예, 아니오만 대답하게 하더라고요. 그러니 사실대로 말을 할 틈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진술이 되었나 보네."



"뭐요? 20년? 엄청나게 억울하게 고생하셨네"

             

▲  재심 관련 설명을 들으며 박상은씨의 판결문을 읽어보는 최○○

ⓒ 변상철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 한 잔을 들이켜던 그가 박상은씨에게 물었다.



최 "그런데 얼마나 (감옥에) 사셨소?"



박 "내가 북한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혐의로 근 20년 감옥살이를 했어요."



최 "뭐요? 20년?"



박 "내가 23살에 감옥에 들어가서 나오니까 43살이더라고요."



최 "아이고, 고생 많으셨네. 고생하셨어. 엄청나게 억울하게 고생하셨네."



박 "그 고생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요."



최 "나 때문에 고생 많으셨네."



박 "에이, 무슨 말씀을. 그게 왜 최○○씨 때문이에요? 보안대 놈들이 그렇게 한 거지."


  


말없이 69년 판결문을 읽어보던 최○○이 말했다.



최 "북한으로 탈출하려는 사람이 무슨 초소에 노크를 해요? 이거 다 거짓말이지. 우리 초소까지 오는 데 무슨 검문소나 철책 같은 것이 없어서 길을 잃고 온다고 해도 아무런 제지 안 받고 그냥 올 수 있거든. 내가 확실하게 말하는데 이 사람 검거한 것 아니고 체포한 것도 아니에요. 자기 발로 들어온 사람인 것 확실해요. 그건 내가 확실히 증언해 줄 수 있어요."



최○○은 박씨의 억울함에 공감하며 확인서를 작성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이 필요하면 어디라도 가서 증언을 서 줄테니 걱정 말고 꼭 한을 풀라고 위로했다.



귀중한 확인서... 전직 수사관들의 양심고백 빼곤 다 찾았다


             

▲  최○○씨가 쓴 자필서

ⓒ 변상철


 


이날 최○○과의 만남은 꺼져가던 박상은의 재심 재판에 커다란 힘을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북한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박상은씨가 검거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면 판결문상의 기초범죄사실이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박씨는 2월 15일까지 추가 증거를 제출해야 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추가 제출된 증거에 따라 재판부는 원심 재판의 문제점을 살펴 재심개시를 결정할 예정이다.



▲ 고문을 받아 범죄사실이 조작됐다는 피해자의 주장 ▲ 훈련소 동기 문○○의 보안사 감금 증언 ▲ 군 구치소 수감 중 자신의 고문 후유증을 목격하고 증언한 수감동료 ▲ 국가인권위에 기재된 고문 실태내용 그리고 ▲ 최초 박상은씨를 검거했다는 최○○의 검거사실 부인 등이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다.


  


남은 것은 당시 박상은을 조사했던 보안대 수사관들의 고백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전직 수사관들의 양심고백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 공은 재심재판부의 몫이다. 국가의 정보에 제한적 접근권을 가지고 있는 시민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를 보였다면, 이제 법원은 이 수집된 증거로 정의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에서 멀어진 사법부의 정의를 다시 세우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한다. 2월의 서부지원 재판이 주목되는 이유이다.


             


▲  어렵게 증인을 찾은 박상은씨, 2월 15일 법원은 과연 그의 재심을 허락할까.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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