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오랜 친구
“같이 가실래요?”
“싫어. 그 인간 뭐 하러 보러가.”
“그래도 저희가 갈 때 같이 가시죠. 나중에는 가지도 못할 텐데.”
“에이, 그런 인간 뭐한다고 보러..”
한사코 안가겠다던 광보 삼춘은 결국 못이기는 척 우리 차에 함께 올랐다.
그렇게 말없이 20여분,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제주양지공원’
이곳에 그의 감방 동기가 묻혀 있다.
“어디에 있는거야?”
오는 내내 툴툴대며 납골당에 도착하자, 그의 동기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묻는다.
“아까 직원하고 통화할 때는 제2추모관 112실 248번이라고 했어요.”
“감방에 갇혀 있을때랑 똑같구만.”
그의 투덜거림은 계속되었다.
2추모관을 찾았고, 112호실을 찾았고, 맨 아래 작은 납골함에 그의 이름을 찾았다.
“오재선”
사진 한 장도 없는 그곳에 이름 석자만 달랑 적혀 있었다.
오재선은 작년 재심을 통해 양승태로부터 허위간첩이 된 판결을 뒤집고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리고 형사보상금을 받아 오랫동안 그를 돌봐주었던 양로원을 떠나 독립하여 살기로 했다. 그런 결정을 광보 삼춘이 반대했다.
“너 지금 여기 양로원에서 사니까 밥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냐. 너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놈이 밖에 나가서 어떻게 살라고 그래. 밥이라도 해 줄 사람도 없잖아. 너 여기서 나가면 죽어.”
친구의 이런 말에도 오재선은 도우미를 부르면 된다며 부득부득 집을 얻어 나갔다. 그리고 집을 얻어 나간지 한달 반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알게 된건 그로부터 다시 한달 반이 지나서였다.
광보 삼춘은 그의 납골함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랬다. 그는 단 한번도 스스로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 감옥에, 연좌제에, 보호관찰에, 양로원에, 이제 죽어서는 납골함에 있다.
무죄를 선고받고 보상금을 받아도 이들의 삶은 누군가 돌보고 살피고 치유하지 않으면 이렇듯 비참한 삶이 된다. 지금도 어딘가에 또다른 오재선이 죽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괜찮으세요?”
돌아오는 길에 광보 삼춘이 걱정되어 물었다.
“나야 사람들하고 사니까 괜찮지. 그래도 기분은 좀 그러네.”
한참을 말없이 오던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다음에 재선이가 환하게 웃는 사진이라도 좀 찾아서 갖다 걸어줘.”
네, 광보 선생님. 꼭 그렇게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