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Jun 20. 2024

여전한 하루, 여전한 나

(2024.06.20.)

"아, 또 그런다."

"그냥 다 읽어주면 안 돼요?"

"아, 또 기다려야 해."


<화요일의 두꺼비>를 읽다가 내일 마무리를 하는 것을 앞두고 그만 두었더니 오늘 아이들이 하는 원망들. 다들 알면서도 또 그러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그 재미로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의 첫 수업은 수학시간. 4단원. 비교하기. 무엇과 무엇을 비교하는 시간. 오늘은 길이를 비교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끈의 길이 중 누가 더 긴 길이를 뽑았는 지를 살펴보고 가지고 있는 연필의 길이도 비교하여 보게 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기준' '출발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도 다시 인지를 시켜가며 했다. 그리고 나서 '한 뼘'을 비교하기로 했다.


"너희들, 한 뼘이라는 알아? '뼘.'"

"알아요? 이거?"


'이거'라며 가리키는 건 다름 아닌 자기 '뺨'. 귀여워 기절하겠다.


"뺨이 아니라, 뼘! 몰라?"

"???"

"자, 이 손가락을 이렇게 길에 뻗었을 때, 여기서 여기까지 길이를 한 뼘이라고 해요."

"아~"


그래서 각자 수학 공책에 그어져 있는 굵은 선 앞에 엄지 손가락을 얹어 놓고 쭉 뻗어 중지까지의 거리를 옆 짝과 견주어 보게 했더니 재밌어 한다. 이후로는 책상과 의자를 모두 밀쳐 놓고 뒤편 교실 바닥 장판 선이 그어져 있는 곳에 자기 학용품과 물건을 가지고 가서 줄어 서게 하고 기준선을 확인하게 해서 5분 동안 가장 길게 자기 물건을 늘어 붙여 놓도록 했다. 아이들은 이것도 신나게 한다. 그렇게 하고는 길이를 비교하게 했다. 열심히 자기 물건을 길게 늘어 놓고 신나 하는 아이들. 12색연필 다 꺼내고 공책에 각종 학용품 다 이어서 길게 만들려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기도 했다.


"00는 길었는데, 00은 작아요."

"아, 이럴 때는 작아요가 아니라, 짧아요 라고 해요. 따라해 보세요. 짧다."


다음으로는 늘 1학년과 할 때면 종이를 가늘고 길게 잘라 이어서 가장 길게 늘어뜨리는 활동을 해 보았다. 오늘은 색지를 나눠주어 달리 했는데, 예상대로 이번의 아이들은 손놀림이 조금 날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실패해도 계속 반복해서 완성해 보는 경험을 쌓게 해 보았다. 일단 해냈다는 기쁨을 드러내며 누가 더 길고 짧은 지를 확인하는 선에서 즐겁게 수업을 마무리 했다.


다음 수업은 통합교과 우리나라를 알아보는 시간. 오늘은 우리나라 집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 예전에는 집을 큰 종이로 직접 만들어 보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데 집중을 하는 터라 의식주의 하나인 우리나라에 집의 특징을 간략히 알아보고 입체 퍼즐식 만들기 용품으로 접근을 했다. 아직은 서툰 아이들이지만, 생각보다는 적응을 잘 해주었다. 모든 아이들이 다 완성을 하지 못했지만, 서로 도와가며 상당수의 아이들이 한옥을 완성시켜 나갔다.


집의 기초는 바닥부터 지어진다는 걸 이 과정을 통해 알 수 있기를 바랐고 우리네 한옥의 집 구조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도 이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시간이 모자라 한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좀 더 하기로 했다. 초가집도 지어야 하기에 시간이 모자라기는 한데, 이번에 나온 통합교과의 구성이 이해가 잘 가지 않고 구성도 맘에 들지 않아 집중과 선택의 폭이 클 것 같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아이들 수업을 다 마치자 피곤이 갑자기 몰려왔다. 요즘 이러지 않았는데, 어제와 오늘 계속 이렇다. 아이들 돌려 보내고 불을 끄고 잠시 의자에 누워 눈을 붙였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2학년 녀석들이 내가 잔다고 수군댄다. 그래서 '왔'하며 일어나서 깜짝 놀래켜 주었더니 "박진환 샘 여전하네." 한다. 귀여운 녀석들. 그렇게 잠을 깨서 잠시 멍을 때리다 찾아온 보호자 분 두 분을 잠시 만나고는 독서동아리 아이들을 맞았다. 수영수업을 받고 온 아이들은 졸리는 듯 하품을 하며 내 이야기를 들었지만, 끝까지 함께 해주었다.


이렇게 일기를 쓰고 나니 퇴근 시간. 도무지 수업준비랑 업무를 볼 시간이 없어 나는 또 오늘 야근을 한다. 언제 제 시간에 모든 일을 다 끝내고 퇴근을 할 수 있을지.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109일째 되는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칠 때가 됐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