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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n 26. 2024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2024.06.26.)

어제는 출장으로 오늘은 환송회(행정실장)로 늦게 들어와 이제야 일기를 쓴다. 내일은 야근을 해야 해서 삼일 내내 제 때 퇴근을 하지 못할 형편이다. 주말에는 지인의 따님 결혼식으로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몸살이 안 나야 하는데...괜한 걱정이 든다. 그래도 아이들과 지내는 하루는 늘 기운을 내게 해준다. 오늘은 'ㅎ', 목구멍소리를 배우는 시간이자 닿소리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한글교재를 이리저리 살피던 한 아이가 불쑥 내뱉는 말.


"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얘들아, 우리 이제 다 배웠어."

"그러네. 이제 다 배웠어. 선생님, 이 다음에 뭐 해요?"

"와, 그렇지 이제 거의 끝이 보인다. 음...이제 배운 거 가지고 재밌는 낱말 놀이도 하고 즐겨야지."


2년 전 6학년 아이들과 김남중 작가의 <나는 바람이다> 11권을 읽을 때도 아이들이 마지막 11권을 다 읽고 내 뱉은 말도 비슷했다. 


"정말 제가 책을 11권이나 다 읽을 수 있을지 몰랐어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요."


나는 내 아이를 키울 때도 그랬고 학교 아이들 곁에서 살아갈 때도 꼭 가르쳐주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꾸준함이다.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것 없다는 것. 꾸준함이 나를 성장 시킨다는 것. 그 기분을 느꼈을 때의 감정이 곧 성취감이고 배움에 대한 가치일 거라는 것.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을 때, 그것이 자기 삶의 관성이 되고 습관이 되고 무엇을 해도 포기하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해 보려는 의지를 키워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졸업한 아이들 중 나를 만난 아이들이 그때 그 감흥을 이따금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지금에 와서 큰 힘이 되고 있다고도 한다. 


오늘 우리 1학년 아이들이 3월 홀소리로 출발하여 6월에 닿소리로 마무리하기까지 꾸준히 달려왔다. 처음에는 어려워 하던 획순과 공책 처리 방식도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알아서 움직이게 되었다. 꾸준함에는 분명 힘이 있다. 오늘 아이들이 자기 입으로 그걸 확인하는 것 같아서 절로 기분이 좋았다. 두 번째 블록 시간에 통합교과 '우리나라' 중 '초가집'을 만들면서 처음에 조막조막한 손들이 잘 움직이지 않아 고생하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또 절로 기분이 좋았다. 다음주에는 한복에 관한 색종이 접기를 할 텐데, 그때도 좀 더 달라진 아이들 모습을 읽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여름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이 아이들은 나랑 115일을 살았다. 아직은 다툼도 많고 잦고 일러바치는 일도 많은 아이들. 그럼에도 또 나가서는 서로 도우며 개구리를 잡아대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 아이들이다. 배려와 협력이라는 개념이 이 아이들에게 아직 몸속으로 스며들지는 못했지만, 이런 관계와 시간 속에서 성큼 성큼 자라길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 뿐이다. 조금 있으면 수학교과도 끝을 향해 간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학교과를 통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익히게 됐는지, 그리고 또 어떤 성장을 했는지를 읽어내려 한다. 당장 모레 감자가 약속을 지켰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아이들이 꾸준히 자라고 자라 약속을 지킨 감자에 대해 감사해 하고 감자의 성장에 대한 그 힘을 느끼길 바란다. 감자캐기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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