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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n 28. 2024

감자가 약속을 잘 지켜주었듯이

(2024.6.28.)

아침부터 쨍쨍한 하늘이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오전이어서 그나마 무난히 감자를 캐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이들도 저마다 교실로 들어오는 모습들이 뭔가 대단한 걸 할 것처럼 모자랑 토시랑 갖춰 입고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아침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아이들에게 동화책 마지막 꼭지를 읽어주는 것으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크고 작은 네 상자를 들고 함께 텃밭으로 마침내 출동!


3학년이 앞서 감자를 캐고 있었고 우리는 바로 옆 우리 감자 밭으로 다가갔다. 가면서 감자 때문에 배웠던 노래 두 곡을 부르게 했는데, 아이들이 잊지 않고 불러 주어 고마웠다. 노래를 부르는 게 살짝 약하기는 한데, 우리 반 아이들이 노래 부르기는 엄청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개별로 보면 딱히 모든 아이가 그렇지도 않지만. 아무튼 감자 밭에 도착해 먼저 감자 줄기를 손으로 뽑는 시범을 보였다. 그러고 난 뒤에 호미로 흙을 파서 숨어 있는 감자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녀석들 보소. 내 설명과 시범은 듣는둥 마는둥, 보는둥 마는둥 특히 남학생들의 시선은 마구마구 분산돼 있었다. 개구리를 찾는 눈빛들. 사마귀를 쫓는 눈빛들. 하여간 지금껏 만난 아이들과 참 다르다. 하염없이 귀엽기도 하지만,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니 원. 어땠든 잔소리를 해가며 감자줄기를 뽑는데, 이것도 뽑는둥 마는둥, 도무지 잔소리를 안 하면 딴짓을 한다. 조금씩 감자들이 뒤섞여 나오고 호미로 땅을 파면서 비로소 감자에 시선을 돌리고 상자에 담기 시작하는 아이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땅도 감자가 있는 곳이 아니라, 딴 곳을 판다. 어김없이 잔소리는 이어지고 다시 집중을 시켜 감자를 캐어 상자에 담도록 했다. 감자 캐기가 사실 순식간에 이뤄지는데, 이번 아이들은 딴짓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 잔소리로 힘을 어지간히 뺐다. 우여곡절 끝에 상자에 담아낸 감자. 다음주 장마시작이라 일찍 캐어서 그런지, 늦게 심은 탓인지 크기가 큰 것은 그다지 많이 않지만, 양은 꽤나 나온 것 같았다. 다행이었고 다음주 감자요리 행사를 진행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듯했다.


그렇게 교실에 들어와서 상자를 놓고 거기에 신문지를 덮고는 아이들에게는 다시 주문을 했다. 집에 가져갈 가장 큰 감자 하나씩은 골라 보라고. 그래서 씻어 오고 키친 타올에 감싸 가방에 넣어 가져가라고. 그렇게 챙긴 감자와 아이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놓고는 생태공책을 꺼내 오늘의 풍경을 기록하게 했다. 아직은 글자도 문장도 어색하고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라 느낌 생각란에는 쓰지 않게 하였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쓰고 싶은데 쓰면 안 되냐고 한다. 그래서 써보라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자기들도 한 번 써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요녀석들이 쓰나 지켜 보았다. 궁금도 하고 기대도 하였다. 그리고나서 부르는 아이들. 그 아이들 곁에 가서 본 느낌 생각문장은 너무도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나는 글씨와 내용이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딘가 싶었다. 이번 보호자분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학습을 강요하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지금껏 만난 분들과 달랐다. 물론 비슷한 학습을 해도 느린 경우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정말 1학년으로 들어와야 할 학습상태였다.


어쩌면 이게 너무도 당연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 또한 아이들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학습 자체를 즐기도록 했다. 천천히 정말 천천히 움직였다. 그래서 조금은 걱정도 들기도 했다. 지금껏 이 시기에 만나지 못한 1학년 아이들의 학습력이기도 하고 진도도 겨우 겨우 채워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학습에 일찍부터 피곤하게 만들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과 순간순간 아이들이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와 결과들이 있어 2학기를 기대하고 있다. 큰 변화는 없어도 무난히 1학년 국가교육과정의 수준을 따라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렇게 정리를 한 뒤, 다음은 수학 5단원으로 넘어갔다. 50까지의 수를 공부하는데, 오늘은 맛보기 수업. 맛보기 보다는 이미 학습한 부분이 있어서 교과서로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10이 되는 수를 익히는 부분이었는데, 여전히 학습한 것과 파생된 부분의 확장이 더디다. 일일이 말을 해주어야 했는데, 이번 교과서가 특히 맘에 안 들어 더 힘이 들었다. 글이 너무 많고 어렵다. 교사의 설명과 안내가 없으면 읽기 유창성이 떨어지는 1학년에게는 너무도 힘겹다. 겨우겨우 수학시간을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이고는 아이들을 보냈다.


여전히 사마귀와 개구리 이야기만 하는 우리 아이들. 감자가 약속을 지켜주었듯이 우리 아이들도 내가 공을 들인 만큼 2학년이 될 무렵 기대한 만큼 성장하고 달라져 주길 바란다. 그렇게 또 믿고 있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117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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