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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l 02. 2024

단단해져 간다는 것

(2024.7.2.)

우리 반 아이들, 이전과 다른 건 다른데, 같은 게 있다. 그건 바로 7월 증상이다. 점점 담임의 말을 허투루 듣고 제 갈 길을 간다는 것. 대개 학년이 그렇지만, 1학년도 예외가 아니다. 1학년은 특히 적응기간이 끝나면서 좀 더 도드라진다. 방학을 앞두고 담임의 기질도 알고 저 때는 어떻게 된다는 눈치도 바싹하니 알게 될 무렵, 1학년 아이들도 점점 담임의 말을 때때로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때로는 양상이 지나쳐 보일 때, 큰 소리를 내곤 하지만 그때뿐이다. 잠시 뒤에는 언제 담임이 잔소리하며 소리쳤냐는 듯, 각자 나래를 편다. 오늘 점심시간은 압권이었다.


"선생님, 이제 그만 먹어도 돼요?"

"아니, 이거 안 먹었잖아. 이것도(깻잎 장아찌) 한 번 싸서 먹으면 좋은데..."

"안 좋은데요."

"어, 이거 먹으면 예뻐지는데."

"안 예쁘고 싶은데요."

"너 자꾸 대들래?"

"네, 대들 건데요. 히히."


옆에 있던 두 여자 아이도 찾아와 묻는다.


"선생님, 이제 그만 먹어도 돼요?"

"보자, 저것도 좀 먹지?"

"아뇨. 안 먹을래요."

"그거 먹으면 정말 예쁠 텐데."

"싫어요. 그리고 저 못 생겼어요."

"저도, 안 예뻐질래요."

"뭐~ 으이그."


이렇게도 안 되면 나한테 다가와 앵기고 끌어안고 난리도 아니다. 기강(?)을 바로 잡아야지 싶다가도 잔소리하고 때때로 혼을 내다가도 이런 애들 모습 때문에 그만 넘어가 버린다. 도무지 이번 애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게 꽤 있다.


오늘 수학 시간은 10 이상의 수로 모으기 가르기를 하는 시간이었다. 구슬판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몇몇 아이들이 자꾸 머리로 하려 한다. 그리고는 손가락까지 쓴다. 앞에 구슬판이 있는데도 말이다. 구슬판으로 모으기를 하는 방법을 10여 차례 반복하니 겨우 따라오고 문제 해결에 쓰기 시작했다. 다음은 가르기. 가르기는 모으기와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관계를 잇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당수다. 주어진 문제만 해결하려는 습성이 보인는데,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한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모르겠다.


대충 하고 넘어가려는 아이들이 있어 중간놀이 시간까지 붙잡아서 끝까지 해결하고 넘어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음에는 다른 교구를 사용할까 싶은데, 가르기와 모으기에 대한 감각이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연습에 또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에 만난 아이들은 앞으로 쭉 달리는 느낌이 아니라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자주 든다. 어쩌면 이게 더 단단해지는 길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인데, 꾸준함이 동반돼 단단함이 탄탄함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이어지는 색종이로 여자 한복접기도 처음에는 혼자 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조금씩 달라져 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늘 연극수업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서 흉내를 내며 음악에 맞춰 이동하고 걷고 움직이는 활동이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밝게 웃으며 킥킥 거리는 아이들 모습도 정겹다. 오후에 시간이 남아 어제 못한 초성 퀴즈 중 '과일 편'을 했더니 꽤나 자신감을 보이며 정답도 맞추는 비율이 높아졌다. 이 과정을 충분히 즐기는 아이들은 역시나 7월의 악당들을 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겉으로야 잔소리를 쏟아내지만, 어느새 달려와 내 손을 잡고 내 허리를 잡고 내 옷을 잡아당기는 아이들 때문에 내가 손쓸 방법이 없다.


어제 그렇게 밥 먹는 거 때문에 시루다가 울음을 멈추지 않았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은 어제처럼 울지도 않고 참으려 하고 참아냈다. 급식판도 싹 비웠다. 그렇다. 그랬다. 그냥 이렇게 이렇게 더 단단해져 가길 바랄 뿐. 어제의 내가 오늘의 또 다른 내가 되면서 더 단단해져 가자. 나도 너희도. 우리 모두가. 그렇게 오늘은 우리가 만난 지 121번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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