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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l 04. 2024

낯설다는 것에 대하여

(2024.7.4.)

오늘은 감자요리 하는 날. 생태지원단 어머님들 세 분의 도움으로 지난 3월말에 심은 감자를 6월  말에 캐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 한 날이다. 요리 제목은 감자샐러드, 감자누룽지. 특히 감자누릉지는 요즘 한창 뜨는 감자요리로 삶은 감자를 컵으로 눌러 납작하게 만든 뒤에 버터를 두른 프라이펜에 굽어 마치 누룽지처럼 만들어 먹는 방식이었다. 아침 10시부터 시작하는 거라 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잠시 아이들을 준비 시키면서 어제 미처 다 공부하지 못한 겹모음 'ㅚ, ㅟ, ㅢ'를 마저 공부하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꼭 이런데는 눈치가 빠른 지*이가 한 마디 건넨다. 


"어, 분명히 시간표에는 국어가 없었는데?"

"음, 원래는 그랬는데, 시간이 한 시간 뒤로 미뤄지면서 어제 못한 거 하는 거야. 그리고 내일 다모임에 우리 1학년도 참여하기로 해서, 내일 시간이 없어서 내일 거 조금 당겨서 하는 거고."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아이들 각자 개인 준비물 챙겨 실과실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와 계신 지우원단 어머님들과 감자를 씻는 것부터 시작해 껍질을 숟가락으로 벗기는 것까지 했다. 재밌으면서도 힘들다는 감자 껍질 벗기기 활동을 끝낸뒤, 감자를 삶고 샐러드를 만들기까지 아이들은 엄청 신이 난 표정들이었다. 마침내 샐러드가 만들어지고 맛을 보는데, 얼마나 맛있다고 난리던지. 급식으로 나오면 거들떠도 안 볼 이 음식을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고 맛을 보면서 비로소 제 맛을 느끼는지 정말 많이 먹고 가져온 밀폐용기에 잔뜩 챙겨 갔다. 


그 다음으로 익은 감자를 컵으로 눌러 납작하게 해 버터를 두른 프라이펜에 구워 감자누룽지를 만들어 먹는데, 거기다 적당한 소금과 설탕을 살짝 넣어 구웠더니 어찌나 맛나던지. 세 모둠 양념의 농도가 조금씩 달라 맛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너무도 맛있다며 생각보다 많이들 먹었다. 곧 점심시간이어서 소식좌인 우리 아이들이 과연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원단분들과 협의한 대로 30분 일찍 정리 정돈을 한 뒤 배 좀 꺼지게 놀도록 해주었다. 안 그래도 중간놀이 시간을 넘어서 요리시간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일단 나가기 전에 그동안 한 학기 동안 수고해 주신 세 분의 지원단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단체로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배가 부르다며 식판에 담는 양을 대폭 줄여야 했다. 30분 동안이나 놀았는 데도 배가 안 꺼졌던 모양. 그럼에도 나름 괜찮은 식사를 한 뒤, 나와 아이들 모두는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낯선 음식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참 많은 아이들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직접 만나 깊숙이 낯선 음식으로 들어가니 두려움과 거부감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늘 이 시간에서 두려움과 거부하고 싶었던 대상을 용기내어 조금 더 자주 만나고 깊숙하게 만나면 대부분은 낯설어서 그랬다는 것, 그 낯설다는 느낌이 괜한 벽을 쌓게 해서 더 큰 세계로 나가지 못하게 했던 것이라는 것을 부디 깨닫기를 바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던 아이들은 모든 게 낯설었을 게다. 그리고 두려웠을 게다. 비단 이는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보호자들도 다르지 않다. 제대로 모르고 의심을 하거나 제대로 모르고 기대 수준을 정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게다. 낯섦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가는데는 시간 못지 않게 노력과 너른 마음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게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나는 아이들을 믿으려 애를 썼고 또 믿었다. 아직은 갈 길이 좀 남았지만, 난 이제 아이들을 읽어내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나를 받아들이고 믿기 시작했다. 이제 낯섦은 점점 사라지고 익숙함에서  믿음과 애정이 피어오르고 있다. 오늘 했던 아이들에게는 조금은 낯설었던 감자요리가 아이들과 내게 새로운 믿음과 용기를 주었던 시간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날이었다. 오늘은 아이들과 내가 만난지 123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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