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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Nov 01. 2024

'아랑곳'이라는 낱말이 어울리는 아이들

(2024.11.01.)

오늘은 저녁 7시에 저학년 연극제가 열리는 날. 다음주 금요일은 고학년 연극제를 바깥 큰 공연장에서 하고 저학년 연극제는 학교에서 하게 됐다. 연극교육과정은 우리 학교 핵심교육과정으로 내가 강력히 주장했던 바였다. 이 학교에 오자마자 6학년을 맡으면서 당장 영화를 준비하라고 해서 황당했었다. 왜 해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그냥 해 왔으니 하는 거고 아이들이 기대한다는 거였다. 교육과정의 부재가 빚은 안타까운 현상이었다. 철학과 관점은 빠지고 프로그램만 남아있는 상태의 학교들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배움으로부터 멀게 하는 지를 모르는 것이다. 영화가 문제가 아니라 '왜'가 있어야 하는데 없고 오롯이 새로 맡은 담임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형태에 나는 화가 났었다.


딱히 아이들은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오히려 다양한 학급운영에 시선이 가면서 기대는 여러 형태로 튀어 나왔더랬다. 그리고 영화는 오롯이 담임이 감독의 몫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경험이 필요하고 6학년의 수많은 교육과정의 일부를 포기해야만 했다. 나는 그럴 수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2년 뒤 나는 남은 교사들을 설득하고 독려해서 교육과정을 바꾸었다. 언어를 중심에 두고 생태, 예술 교육과정이 어우러지는 균형감 있는 교육과정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초등단계에서는 미디어가 아니라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연극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연극교과정이 언어와 예술교육과정에 스며들게 했다.


독일의 '헬레네랑에'라는 대표적인 혁신학교에서는 연극을 중요한 교육과정으로 배치해 놓았다. 숨죽여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주눅 들고 무기력하던 아이들에게 모든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빛날 수 있는 연극교육과정은 내게 매우 인상이 깊었다. 실제로 그 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하면서 다음에 정말 내가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는 학교에 가면 꼭 실현해 보고 싶었다. 결국 그 실현을 거산에서 하게 됐고 전면적으로 교육과정을 언어와 예술, 생태중심으로 재편했다.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이 멀지만 우리 학교에 가장 어울리는 교육과정이라 여기고 있다. 그 일환으로 1학년도 1학기부터 전문강사와 협업하여 자기 표현을 하는 또 다른 지점을 배우고 드러내게 하였는데, 오늘이 그 마지막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시작하게 되고 주변이 어수선한 탓인지, 아이들의 집중력은 매우 흐트러져 있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연습으로 마치게 되었고 오후 리허설을 다시 기약해야 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을 다잡을 생각으로 교실에 들어와서는 언성을 높이며 혼을 냈다.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아이들이 순간 멈칫 하더니 긴장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이때다 싶어서 주절주절 잔소리를 했다.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듯...이내 다시 연습을 해 보았다. 낭독극이지만 이제 거의 대사를 다 외우고 동작도 익힌 탓에 집중만 해주니 너무도 잘해주었다. 그제야 칭찬을 하고 오후 마지막 연습과 공연 때, 모두 집중을 하자 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중간놀이 시간을 주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뛰어 논다.


중간 놀이 시간 이후에는 일기 쓰기 지도를 했다. 이제 주말부터 일기를 쓰는 글쓰기의 마지막 단계에 도전한다. 두 달 남은 기간에 우리 아이들이 맞춤법은 조금 틀려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글로 쓸 수 있는, 편하게 글로 나타낼 수 있는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일기장을 나눠 주었고 일기장 하나 하나에 '00의 소중한 일기장 1'이라는 제목도 붙여주고 일기장 첫 면지 쪽에는 일기를 쓴 사례를 붙여 참고도 하도록 했다. 날짜, 날씨, 제목, 한 줄 띄우고 본문을 쓰는데, 왼쪽과 오른쪽 줄을 맞춰야 하고 대화글이 나오면 큰따옴표로 한 줄. 그 다음 다시 써야 하고 작은 따옴표는 속으로 말한 것을 쓰는 것으로 이때는 이어서 써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미 <맨 처음 글쓰기> 공책을 하면서 반복해서 말했던 거라 아이들의 이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제 그렇게 써 올 수 있느냐 하는 것. 이를 위해 지난 해, 지금 2학년들이 만들었던, 내가 지도했던 아이들의 일기를 들려주었다. 들려주니 재밋어 한다. 앞으로도 좋은 글을 계속 들려주면서 감각을 살리려 한다. 가정에도 연락해서 일기 쓰기 지도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알려드리려 한다. 일기는 서사문의 한 종류이다. 서사문을 잘 쓸 수 있으면 다른 글로 확장이 매우 쉬워진다. 섣불리 논술학원으로 아이들을 보내기 보다 이런 기본적인 글쓰기의 출발점을 확인하고 익숙해지면서 독서가 병행이 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삶을 글로 쓰는데 어렵지 않게 접근을 한다. 다만 교사도 부모도 그런 경험이 없을 뿐이다. 이제 <맨 처음 글쓰기> 공책을 꺼내게 해 어제 했던 주제 '눈'에 관한 겪은 일 쓰기를 시켰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 하니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그걸 써달라 했다.


그렇게 써낸 아이들의 글은 분명 이전과 달랐다. 두 달 전, 자기 생각을 글로 써내는 것에 끙끙 앓던 아이들. 맞춤법도 심하게 틀려 매번 고쳐주기도 힘들었던 아이들이 이제 제법 자기 삶과 생각을 글로 써낸다. 이렇게만 한다면 일기쓰기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은 두 달 잘 지도해야겠다는 생각과 제법 잘 자라 준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온 교실. 아이들은 언제 아침에 내게 혼이 났었냐는듯, 정말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덤빈다. 그리고는 뽀뽀를 하겠다는 녀석. 내 팔과 다리를 잡고 매달리는 녀석, 내 등에 업히는 녀석들 때문에 곤욕을 한동안 치러야 했다. 아침에 녀석들을 혼낸 것에 대한 답이려니 하며 달게 받았다. 이제 저녁 7시까지 나는 돌봄 시간 이후 리허설과 공연준비로 바쁜 시간을 또 보내야 한다. 이제 잘 할 것이라 믿음이 간다. 아랑곳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이제 믿음이 갔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44일째 되는 날이었고 헤어질 날을 62일 앞두고 있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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