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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Nov 28. 2024

어제를 추억하며 오늘을 사는

(2024.11.28.)

오늘은 아이들이 원하고 기다리던 수업을 했다. 사실은 오늘은 생태수업으로 겨울놀이 활동을 해야 했는데, 날이 궂어 할 수 없이 다음 주로 연기를 했다. 그래서 내일 하려던 '시로 노래 만들기' 활동을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익혀 온 '어린이 시 따라 쓰기'에 실린 시 중에서 맘에 든 것을 짝을 지어 가사도 쓰고 노래도 지어 보게 했다. 내가 시범 삼아 막 시로 노래를 만들어 보이니, 대단하다 한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만들어 보겠다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든 노래가 어찌나 우습고 재밌던지. 부끄러운 것도 없이 자신 있게 만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참 귀여웠다. 서로 박수 쳐 주고 웃고 즐기는 시간이었다.


눈 비가 섞여 내린 오늘. 중간놀이 시간에 아이들은 눈비를 맞아가며 산으로 운동장으로 뛰어다니고 들어왔다. 젖은 머리, 젖은 옷, 젖은 바지는 허벅지 상단까지 접어 올리고 젖은 양말은 가방 속에 쑤셔 넣고 그리고는 옷이 젖어 불편하다며 수업시간 투덜대기까지. 그 투덜을 받아내가며 나는 두 번째 블록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두 번째 블록 시간에는 <맨 처음 글쓰기> 움직씨의 마지막 주제어 '담다'를 진행했다. 담다에 이어진 파생어와 단문을 익히고 겪은 일을 쓰기까지 매우 자연스러웠다. 두 세 아이는 아직도 시간이 걸리지만. 나중에는 움직씨 마지막 꼭지 끝에 담은 띄어쓰기 활동도 추가로 해 보았다. 그렇게 달려가니 벌써 점심시간. 아직도 눈비는 섞여 내리고 있었다.


어제 첫 눈이 내리던 날에는 아이들 중 몇 명이 내게 달려와 이런 말을 툭 던지고 냉큼 눈밭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오늘 일기는 이걸로 할 거에요."

"나도요. 눈 내리는 거랑 노는 걸로 쓸 거예요."


지난 한 달 동안 날마다 쓸 거리를 찾는 아이들에게 일기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 날 하루를 돌아보며 순간 사라지는 삶의 한 꼭지를 붙잡아 글로 썼던 일이 나중에 얼마나 큰 추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갈까. 교사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있을 게다. 부디 아이들이 먼 훗날, 자기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했던 교사로 누구나 경험하지만 그것을 글로 붙잡아 쓰지 않던 자신들에게 삶을 쓰게 했던 교사로, 자칫 잃어버린 삶, 잊고 사는 삶을 되살려 주었던 교사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


어제 눈을 주제로 일기를 썼던 아이들의 글을 모아 봤다. 마지막에는 눈 내리는 날에 하늘을 날 던 겨울철새 참매를 보며 신기해 하던 아이들 중 상*이가 쓴 글을 올려 본다. 눈이 내려서 좋고 눈과 놀고 싶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먹고 맛있다는 아이. 눈을 모아서 팔려고 했다는 아이. 우박으로 잠시 변했던 눈덩이를 딱딱한 눈으로 표현한 아이, 마지막 수업 시간에 읽기를 그만 두고 밖으로 나가라는 선생의 말에 신나게 뛰어 놀아 좋았다는 아이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던 어제. 그 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 속을 거닐며 뛰며 자라는 아이들. 그 아이들 곁에서 사는 나는 늘 오늘을 사는 교사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 지 271일째 되는 날이었고 아이들과 헤어질 날을 35일 앞 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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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날씨: 첫 눈 오는 날

제목: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 문**


나는 학교에 갔다 와서 누나랑 같이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눈을 굴렸다. 눈덩이가 엄청 커졌다. 그래서 눈덩이를 들어보니까 무거웠다. 근데 추워서 할머니한테 물었다.

"할머니 나 추워."

그래서 할머니가 점퍼를 가지고 왔다. 조금만 놀다가 추워서 집으로 들어갔다.


날짜: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날씨: 눈사람이 델번한 날

제목: 눈보라 | 유**


나는 선생니이랑 책을 일고 있었다. 선생님이 갑자기 나가자고 했다. 신났다. 나는 박게 뛰처 나갔따. 눈싸움도 했다. 너무 좋다. 내일 또 해야지.


날짜: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날씨: 눈이 펑펑

제목: 눈 먹은 날 | 천**


나느 오늘 학교에 눈이 와서 눈을 만이 먹어따. 마식었다. 학교 안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준간노리 때 친구들리랑 놀았다. 숩받줄(숲밧줄)이었다. 발이 시려웠다. 그래서 교실로 들어갔다. 밥을 먹고 친구들가 술래잡기를 하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하늘에) 참매가 와서 선생님한테 말했다.


날짜: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날씨: 눈이 옷에 들어간 날

제목: "와! 눈이다!"


오늘은 6교시에 눈으로 놀았다. 뭐하고 놀았냐면 눈이랑 싸우고 눈을 팔면서 놀았다. 나는 눈을 모아서 팔았다. 근데 하나도 안 팔렸다. 왜냐하면 눈이 다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왜 못 팔렸는지 몰랐다. 얼어버려서 못 판 거는 내 생각이다. 살구색 미끄럼틀에 눈이 완전 많이 있었다.

"해! 눈이다!"

맨날 맨날 눈이 왔으면 좋겠다.


날짜: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날씨: 눈보라가 쳐서 엄청 추운 날

제목: 가을은 참 이상해 | 전**


오늘은 가을이다. 근데 눈이 왔다. 나는 속으로 '왜 가을인데 눈이 오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한 번 물어봤다.


"엄마, 왜 지금은 가을인데 눈이 와요?"


엄마가 말했다.


"몰라."


근데 갑자기 눈이 돌멩이 같이 딱딱한 눈이 내렸다. 내가 또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이렇게 딱딱한 눈은 뭐예요?"


엄마가 말했다.


"아~ 그건 우박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아~ 그렇구나.'하고 생각했다. 근데 가을에 눈이 내려서 신기했다.


날짜: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날씨: 하예서 앞이 안 보이는 날

제목: 강렬한 눈보라 | 곽**


나는 오늘 오후에 기절해 버릴 것 같았다. 왜냐하면 너무 힘이 센 눈보라가 상*이와 재*이와 하*이와 나를 덮쳐 버렸기 때문이다 상*이가 말했다.


"내 손이 얼 거 같아."


그래서 내가 마짱구를 쳤다.


"그래, 맞아. 몸도 얼 거 갓고."


그런데 갑자기 지*이가


"그래도 숲밧줄은 갈 꺼지?"


그레서 내가


"그래 가 보자."


그랬더니 눈이 엄청 많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나랑 상*이가


"오늘은 못 가."


라고 말했다. 지*이는 우리가 못 간다 하니 나왔다. 다음엔 꼭 지*이가 좋아하는 숲밧줄을 꼭 갈 거다.


날짜: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날씨: 학교가 스케이트장으로 바뀐 날

제목: 첫 눈이 왜 이래? | 송**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한테 눈 오냐고 물어보니

"10분 뒤면 눈이 내릴 꺼 같은데."

라고 아빠가 말했다. 빨리 눈이 내려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친구랑 눈에서 달리기도 하고 가족들이랑 눈으로 놀고 싶다. 눈이 오니깐 차들이 거북치처럼 느렸다. 엄마 차도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니 학교에도 늦게 갔다. 눈이 비가 되어서 내렸다. 나는 아쉬웠다. 그런데 빨리 비가 눈으로 변했다. 도사선생님이

"눈 오는데 교실에 있으면 그렇죠? 밖에서 놀으세요!"

라고 말해서

"야~ 좋다! 빨리 나가자.나이스!"

하면서 친구들이랑 밖으로 나가서 눈을 먹었다. 차갑고 시원해서 빙수 먹은 거 같았다. 오늘은 학교를 늦어서 속상했고 눈이 비로 변해서 아쉬웠고 다시 눈이 내려서 도사님이 나가서 놀으라해서 진짜 너무 좋았다.


날짜: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날씨: 눈이 소복소복 쌓인 날

제목: 참매 | 한**


오늘 점심 놀이 시간에 우리 교실 뒤에서 참매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섯 마리 쯤 있었는데 색깔은 검정색이었다. 크기는 엄청 컸다. 참매들이 우리를 먹이로 삼고 우리 위를 돌면서 날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이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말했다.


"저기 참매 있어요! 진짜에요."


가장 무서웠던 건 참매가 우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참매는 신기하면서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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