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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든 Jul 29. 2024

안도 버튼: 사물과 사람 <인사이드 아웃 2>

사실을 잘 만들어 놓는 것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Inside Out 2, 2024)의

세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편에서 슬픔이가 전반부에서 다른 감정들을 위기에 빠뜨리는 역할이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불안이가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당연히,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슬픔이 역시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추억이 깃든 공에 손을 자꾸만 가져다 대게 되고, 라일리를 계속 슬프게 만들게 되는데, 본인이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라일리를 슬프게 해 다른 감정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다 후반부에, 기쁨이를 비롯한 다른 감정들은 슬픔이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그의 존재이유를 알게 된다.


불안이도 마찬가지다.

불안이는 처음 감정 본부에 등장한 후부터 라일리를 위하는 마음뿐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일 라일리를 위해 철저히 계획하고, 대비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라일리는 오히려 친구들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불안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하며, 기존의 감정들이 쌓아 올려놓은 ‘신념’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불안이는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라일리를 위기에 빠뜨리게 되고, 점점 자신도 그걸 알게 되고, 결국 후반부에서 하키 경기 도중 라일리의 친구를 실수로 다치게 만들면서

순간, 패닉에 빠진다.



*


이 영화를 보며 운 사람들의 ‘눈물 버튼’은 그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라일리는 페널티박스 안에 앉아서, 불안이는 여러 개의 버튼들 앞에 앉아서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태로 덜덜 떨고 있는 장면.


사실 중반부쯤부터 약간 따분이 상태로 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이 장면에서 눈물 버튼이 갑자기 눌렸고, 라일리와 불안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덜덜 떨며 이 상태에서 저절로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리던 나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 불안이는 기쁨이의 도움으로 손을 버튼에서 떼고, 라일리는 자신을 진정시킨다. 그들은 그렇게 순간이지만 튕겨나갈 정도로 큰 에너지가 필요했던 과정을 거쳐서 그 불안의 돌풍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빠져나오는 과정은 순간이지만 빠져나오기까지의 그 에너지가 어떤 날엔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알아서인지, 나는 따분이 상태에서 갑자기 슬픔이 상태로 바뀌어 펑펑 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우는 와중에 생각했다. 아, 사람들이 펑펑 울었다고 말하던 장면이 이 장면이겠구나. (펑펑 울 정도 맞네.)



*


이 장면은 나를 금방 진정시켜주기도 했다.

눈물 버튼이라는 단어와 같은 맥락에서 안도 버튼이라는 단어를 쓰자면, 나에게 안도 버튼은 그들이 패닉에서 빠져나온 후에 라일리가 한 행동이다.

라일리는 심호흡을 하며,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를 만지고, 공기를 느끼며 비로소 눈을 떠 앞을 바라본다.


예전에 나는 누군가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불안해질 때마다 주변의 사물을 만지고 그 사물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로 평소에 그냥 불안함을 느끼는 정도보다 좀 더 진정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을 느낄 때, 그 방법을 써보기도 했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의 질감을 손으로 느끼고, 이 의자는 나무로 만들어졌음을, 내가 이 의자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다음으로 또 다른 주변 사물을 만지며 오로지 이 사물의 사실만을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럴 때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생각보다는 감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사물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에 같이 깔려있던 작은 소리들과 공기들을 같이 느끼게 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순간을 감각하는 것. 그렇게 내가 그저 사람으로 이 순간에 존재하고, 이 사물들도 사물로 이 순간에 존재하고, 소리와 냄새 같은 것들도 그 자체로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만 생각하는 것.


그래서 라일리가 주변을 감각하는 장면은 나에게,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의자, 우리 앞에 있는 컵, 들고 있는 휴대폰, 입고 있는 셔츠 같은 것들에는 그런 힘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직접 불어넣어야 느껴질 수 있는 힘일 테고, 어떨 때는 노력해도 효과 없을 힘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이 순간에 같이 존재하는 어떤 사물들은 그런 식으로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안의 돌풍에 잠시 빠져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기 위해.



*


이 영화는,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언젠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불안으로 인해 실수를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도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불안의 돌풍이 커질수록 빠져나오는 것에도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안의 다른 감정들에 불안을 진정시켜 줄 수 있는 힘이 있으며, 결국엔 우리에겐 불안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주변을 감각하는 라일리를 보며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하며 진정하곤 했던 내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장면을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며, 그리고 나의 몇 순간들을 떠올리며 사물의 힘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 글을 여기까지 쓴 이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게 있다.


사물과 나의 존재만큼 나를 안도하게 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강력한 안도 버튼은, 사람이라는 것 말이다.

라일리가 눈을 떠 앞을 바라봤을 때 눈앞엔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언젠가 라일리에게 또 불안이 오면 그가 떠올릴 사실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사실을 바탕으로 한, 폭신한 안도 버튼.


그래서 결론은,

사실을 잘 만들어 놓는 것,

어쩌면 그게, 우리가 불안에서 빠져나오기를 대비하는 방법들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나와 같이 여기에 존재하는 사물에도, 사람에도, 우리는 우리의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는 힘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안도 버튼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나의 존재 그 자체를 감각하고, 나의 존재이유를 감각할 수 있는 사실들 말이다. 바로 그걸 돕기 위해 불안이가 존재한다는 걸 생각하면서.


불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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