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화였어, 루시.
이 삶에서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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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잔인하게도 갑작스러웠던- 팬데믹 속에서 긴장하며 살았던 그 시기가 언제였더라?
그 시작부터 서너 해가 지나서인지, 벌써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최신작 <바닷가의 루시>를 읽으면서였다.
루시 바턴 시리즈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제외하고는 루시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인 루시 바턴에 몰입하고 공감하며 읽게 되는데, <오, 윌리엄>에서는 -그가 루시에게 상처를 준 인물임에도- 루시의 말들에 몰입하고 공감할 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윌리엄의 이야기에 많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나는 루시 바턴 시리즈 중 <오, 윌리엄>을 가장 좋아한다.
사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서 ‘스며들었다’고 해보았다. 그게 가장 가까운 것 같으니. 근데 또 간단히 말해보니 조금 더 정확한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윌리엄을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것. 그의 이야기에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그래서 나왔나 보다.
루시 바턴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루시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그것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수시로 상처받으며 살아왔으나, 그의 이야기에서는 그런 상처만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랑도 많이 보인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가 평범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어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에게서 사랑스러운 면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루시의 장점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루시 바턴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편안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런 점이, 팬데믹 시기의 루시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책에서 특히 더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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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책부터 나는 내 생각보다 윌리엄에게 너무나 많은 안쓰러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런 게, <오, 윌리엄!>을 읽을 때 루시의 눈으로 윌리엄을 같이 바라보는 것의 재미였다. 그를 신경 쓰게 되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사람에게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바닷가의 루시>에서는 루시와 윌리엄의 이야기가 한 걸음 더 나아감에 따라 윌리엄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비슷하지만 살짝 바뀌었다. 여전한 안쓰러움과 편안함, 그리고 그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루시가 느꼈던 것처럼- 느꼈다.
또, 이번 이야기의 배경의 중심에는 팬데믹이 있고,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의 가족들과 이웃들 등 사람들이 있다. 팬데믹과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쉽게 가늠할 수 없다는 것.
타인은 우리가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잘 안다고 착각할 때가 있더라도 곧 그 착각은 무너지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하지 않나. ‘나 이런 거 좋아했었구나’ ‘이제야 나를 좀 알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당연히.
그리고, 팬데믹도 그랬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윌리엄 같은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나나 루시 같은 사람들은 그 상황의 처음과 끝을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루시는 처음에 윌리엄의 이야기를 듣거나 뉴스를 봐도 펜데믹이라는 상황을 실감하지 못한다. 왜 이 도시 속 내 집에서 떠나 있어야 하는지 답답하고, 마트나 주유소에서 그렇게 장갑까지 낄 필요가 있나 싶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걸 쉽게 가늠하지는 못해도, 그것에 적응하거나, 그냥 그 상태에서 우리의 속도대로 나아갈 수는 있다. 그는 처음에 팬데믹이라는 상황을 유난히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팬데믹이 만든 상황에 적응한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기도 한다. 그게 바로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는 팬데믹 기간 동안 딸들의 삶을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겪고,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겪기도 하고, 윌리엄과의 관계 변화를 겪기도 한다. 온갖 예상치 못한 것들이 빠르게 쏟아졌고, 루시는 그것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내며 당황하고 힘겨워했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들은 지나가긴 하고 자신 옆에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비록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어도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이 쌓였으며,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어도 내가 아는 몇 부분은 믿어볼 수 있는 확신도 생겼다는 게, 이전 작품들에 이어서 이번 작품에서 확실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시간이 지나면 괴로움이란 적어도 아주 조금은 옅어지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과거가 된 것 위에 현재를 쌓아 올리며 살아볼 수는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비록 우리는 팬데믹 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때가 언제인지-그걸 모른다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몰랐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는 옅어지기도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책을 읽으며,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루시와 윌리엄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는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도 있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의 이야기로 느끼며 뭉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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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올 줄 몰랐던 책이라 반가웠다. 비슷하게 재현되는 루시의 말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고, 다시 한번 루시의 눈으로 윌리엄을 그와 함께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그의 딸들과 특히, 밥 버지스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또,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것 같아 좋았다. 갑자기 극도로 불안한 환경에 언제라도 다시 놓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걸 빠르게 받아들이고 적응한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걸 말하는 이야기 말이다.
사실, 격한 팬데믹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책이 나와서인지, 처음의 루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 현실을 받아들이지를 못하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잖아.
그게 참 웃긴 생각이었다는 걸 다행히, 그 생각을 한지 몇 초만에 바로 깨달았다. 그리고 루시가 그 전혀 웃기지 않은 팬데믹 속에서 천천히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더 나아가는 걸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그때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처음에 -몇 초뿐이었지만- 루시를 보며 답답해했던 나는 이 책 후반부의 루시처럼 나아가긴 했는지.
나는 과연 몇 년 동안, 그만큼 정도는 이제 아는 사람이 될 준비를 했는가.
근데, 루시의 이야기가 또 나올지 궁금해지네.
“알았어, 루시.” 그는 전화를 끊을 때, 데이비드가 늘 그러던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윌리엄은 데이비드가 아니었다. 나는 그만큼 알았다. 그러니 그는 그래야 할 필요가 없었다. 나도 그만큼은 알았다.
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