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일기 쓰기 프로젝트(9/365)
꿀 같은 연휴가 지나서 일상으로 내던져졌다. 연휴 동안 거의 본가에 있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본가에서 기르는 식물 중에 하나가 나를 아프게 한다. 본가에 있는 내내 알레르기성 비염이 도져서 너무 힘들었다. 꽃가루 알레르기만 세 종류나 있으니까 신빙성 있다. 게다가 연휴 첫째 날에는 생굴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서 새벽 1시 반에 응급실에 갔다. 선생님이 너무 링거를 아프게 놔주셔서 다음날 손등에 멍이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주 말끔했다. 무신경한 베테랑이었나 보다.
자취방에 돌아와서 부엌을 거의 살균하다시피 했다. 과탄산 소다를 쓸 때는 장갑을 꼭 껴야 한다. 나는 그 지침을 잘 따르지 않는다. 설거지할 때도 거의 장갑을 끼지 않는데, 장갑을 끼면 손에 감각이 무뎌져서 뽀득뽀득 잘 닦이는지 모르겠다. 그 때문에 남들은 나에게 영 설거지를 맡기지 않는다. 이번만큼은 설거지를 원 없이 했다. 기름 낀 타일을 닦고, 부엌 가전에 낀 먼지를 훔치고, 식기와 행주를 소독하는 게 꽤 즐거웠다. 즐겁다고 쓰니까 굉장히 가식적이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즐겁지는 않았는데 힘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즐겁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는 노동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이 힘든 일을 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노동에 매달리면 어지간한 잡생각은 다 타버린다. 무아지경이 된다는 게 흰소리가 아니다. 다만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이번에도 부엌만 해치우는데 거의 반나절이 걸린 것 같다. 다음 날 출근이 아니었다면 밤을 새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이 아깝지 않다.
모순적이게 평소에는 집안일을 잘하지 않는다. 평소에 집이 깨끗하다면 그렇게 폭발적으로 치워야 할 일도 거의 없을 테다. 예전 땐 그런 행동이 전부 '증세'로 보였다. 가령 내가 청소를 안 하고 그때그때 쓴 물건들을 여기저기 쌓아두는 건 내가 우울증이라서 그런 거다. 집에 정을 못 붙이는 건 내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보호와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문장의 주어가 대개 '나'로 시작하는 건 자아가 비대해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문장의 주어가 애초에 '나'일 수밖에 없는 일기를 쓰고 있다. 집을 떠나긴 했지만 여전히 가족들을 사랑한다. 청소를 미룰 때도 있지만 한번 깨끗해지면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 과정을 치유라고 볼 수는 있지만 구태여 그렇게 부르지는 않으려 한다. 내 행동을 조각내서 일일이 분석하는 것은 관찰자로서 재미있다. 분석한 결과가 정신적 결함을 그린다면 의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장이다.
나의 돌발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에 구태여 이유를 만들지 않는 것. 그게 나의 심신에 평화를 얹어주고 있다. 덤덤해지자. 무신경해지자. 떠있는 배에 적응하게 되면 멀미도 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