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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담 Jul 08. 2020

7/7_처음으로 취직을 후회했다.

매일매일 일기 쓰기 프로젝트(14/365)

  오늘은 처음으로 회사에 들어온 걸 후회했다. 이제 배가 많이 불렀나 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검열될 말들을 내뱉고 애꿎은 책상을 발로 차다가. 퇴근 10분 전 극적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퇴근하면서도 입이 댓 발 나와있었을 것이다.


 다방면에 대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은 스타트업의 매력이자 고질병이다. 어떤 날은 현재 업무가 과연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가를 조용히 계산한다.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어쩔 도리는 없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자체는 꽤 즐거워도 그것이 뚜렷한 성과가 되어야 할 때는 무거운 족쇄다. 


 오늘 하게 된 일은 사실 내 전공-프로그래밍-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회사 내에선 가장 나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고, 누구보다 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학업이 싫어서 자퇴 노래를 부르던 늦깎이 반항아였기에, 너무나도 증오하던 코딩을 다시 접하게 된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코딩이라 하긴 어색할 순 있겠다. 오늘 결국 코드는 한 줄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해는 하지 말자, 못 쓴 게 아니라 안 쓴 것이다. 쓸 필요가 없었다. 앱 위에 에셋이 올라가는지, 올라간 상태에서 어디까지 조작이 가능한지, 빌드는 되는지 테스트한 것이었기 때문에 코딩보단 각종 환경설정과 매뉴얼 파악이 주였다. 망할 SDK, 망할 https!


 변명거리를 슬쩍 내밀어보자면 전공이라곤 하지만 오늘 다뤘든 프로그램은 학부시절 살짝 옷깃만 스친 사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주력으로 공부했던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 내외하려는 프로그램 뒷 꽁지를 쫓으며 하루 종일 앓았더랬다. 말하자면 외국어학과라고 모든 언어가 유창하진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어쨌든 극적으로 큰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허무했다. 집에 와서 홀린 듯 손에 잡히는 대로 집안일을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정 확률로 몸을 혹사시키는 이벤트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아서면 치울게 보이고, 치우고 나면 닦을게 보여서 딴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직장동료 언니가 한창 생산성에 대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능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지, 어느 수준, 어느 속도로 일을 완료해야 맞는지를 어려워했다.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으니 현실에 안주하다가 도태될까 봐 두렵다고. 이 모든 시간들이 뜨거운 물에 사그라드는 세제 거품 같을까 봐.


 그 고민은 이제 내 것이 되었다. 언니는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이직이었다. 오늘 문득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었을 때, 이게 당연지당한 순서인 것인지 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설거지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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