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코칭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코칭 실습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 코칭 실습에 참여해 준 고마운 주니어 팀원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에게 물었습니다.
승엽님, 커리어 관리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으잉? 당장 내 커리어도 잘 관리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주지?'
뜻밖의 질문을 듣고 당황한 저의 솔직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을 할 수는 없으니, 평소 가진 이런저런 생각들을 주워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람을 뽑을 때, 혹은 평가할 때 가지고 있는 나름의 마음속 잣대가 있는데, 이것을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면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들이 유의해야 하는 주요 키워드가 될 것 같았습니다. 내가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있으면 채용 시장에서나, 회사 내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까에 대한 제 나름의 답입니다. 비록 저 혼자만의 잣대이긴 하지만, 막상 정리를 해보니 여러 사람들에게 적용이 될 법한 보편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워섬긴 그날의 엉성한 답변을 좀 더 정갈하게 가다듬어서 오늘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질문을 하신 분 ('코칭'에서는 '고객'이라고 부른다)에게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진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에게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이 글을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글을 다 쓰고 그분께 링크를 전달해 봐야겠습니다.
커리어 관리에 있어서 첫 번째로 중요한 키워드는 '스킬'입니다.
업무에 필요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역량입니다. 본인이 맡은 직무와 과업에 따라서 '엑셀'일 수도, '피그마'일 수도, '파이썬'일 수도, '데이터 분석'일 수도, '인스타그램 마케팅'일 수도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나 이거 할 줄 알아요”, “나 이거 해봤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할 줄 알아요"보다 좀 더 좋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해봤어요"합니다. 머리로 어떻게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보다는 실제로 그것을 해보았다는 경험은 훨씬 소중하니까요. 바꾸어 말하면 '스킬'보다 '경험'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스킬'이 좀 더 범용적이고 기초적인 단계라고 볼 수 있기에 첫 번째 키워드는 '스킬'이라고 규정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스킬' (혹은 '경험')이 특히나 중요한 것은 주니어/신입 때입니다. 본인의 커리어가 이 시기에 있다면 최대한 많은 스킬을 익히시고 경험을 쌓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툴을 쓸 수 있는지 (써봤는지),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가 여러분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요즘의 저는 직접 하는 일보다도 다른 동료들의 스킬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주니어 시기를 한참이나 지나와서... 이 단락을 자세히 쓰긴 어렵네요;;;)
두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키워드는 '성공 경험'입니다.
앞서 '스킬'보다도 '경험'이 더 좋다고 말씀드렸는데, 경험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것이 '성공 경험'입니다. 성공을 경험했다는 것은 단순히 "할 줄 안다", "해보았다"를 넘어 "잘한다"의 방증입니다. 물론 첫 번째 키워드 '스킬'의 단계에서 잘한다고 주장할 순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주장일 뿐 확실한 설득의 근거가 되긴 어렵습니다. 잘 해낸 결과로 실제로 성공으로 이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을 때 '나의 잘함'에 대해 주장을 넘어 비로소 설득이 가능해집니다.
첫 번째 키워드 '스킬'을 갖춘 사람은 흔할 수 있지만, 두 번째 단계인 '성공 경험'부터는 갑자기 문이 확 좁아지는 느낌입니다. 성공 경험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제 업무 중 하나인 스타트업 투자 유치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투자 유치를 위해 IR 자료를 만들고 투자자를 만나본 사람은 스타트업 씬에 꽤나 많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투자자를 설득해 내고 조건을 협의하고 투자금 납입까지 완수해 낸 사람은 소수입니다. 하물며 후기 라운드에서 수백억 규모의 투자 라운드를 성공시켜 본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IR 자료를 만들어보고 투자자를 만나본 것도 물론 소중한 경험이고 스킬입니다만, 결국 투자 유치까지 성사해 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공했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훌륭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참여한 신규 앱서비스가 10억 매출을 달성했다면, 당연히 사업 아이디어는 좋았을 것이고, 서비스 기획은 훌륭했을 것이고, UX디자인과 개발은 빈틈없었을 것입니다.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유저를 유입시켰을 것이며, 쫀쫀한 서비스 운영을 통해 고객 경험을 관리했을 것입니다. 10억 매출이라는 성공에 도달했다면 (물론 더 큰 규모의 성공에 또 도전해야겠지만) 그 과정에 있는 각각에 대해서 내가 할 줄 안다, 해봤다고 굳이 열심히 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공'이라는 결과물은 훌륭한 과정, 스킬, 경험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성공을 경험했다는 것은 스킬과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꽤나 훌륭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사 입장에서 누군가를 채용한다는 것은 이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채용이라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력서, 면접 등의 평가 절차가 실제 업무 퍼포먼스를 100% 담보할 수 없기에, 그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라는 데에 일종의 베팅 혹은 Risk taking을 하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하나라도 더 검증된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서비스나 회사를 비하하고자 함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채용담당자라면, 쿠팡을 만든 사람을 뽑을까요? 위메프를 만든 사람을 뽑을까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소위 '스펙'이라고 말하는 명문대 학력, 대기업 경력 등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문대, 대기업 타이틀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그곳에 일단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성공 경험을 만들어낸 것이기에, 어려운 목표를 성취해 낼 수 있는 역량/노력/자기관리 등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은 그런 성공 경험을 갖춘 사람이 향후에 우리 회사에서도 다시 성공해 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주니어/신입의 단계를 넘어 미들레벨 (5년 차 이상)에 도달할수록, 점점 더 '성공 경험'을 요구받습니다. 그 정도 연차가 되면 해본 사람, 할 줄 아는 사람 (첫 번째 단계인 '스킬'을 갖춘 사람)은 이미 너무 많거든요. 신입 대비 높아진 본인의 연봉을 합리화시키려면, 단순히 할 줄 아는 사람을 넘어 성공을 시켜본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이러한 단계를 지나고 있다면, 나의 경험이나 스킬을 늘리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만, 확실한 성공 경험을 가지는데 집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3. 재현 가능성
2~3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누군가에게 커리어 코칭을 할 때 두 번째 키워드인 '성공 경험'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재현 가능성'이라는 세 번째 키워드에 대한 생각이 많습니다. 아마도 제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인티그레이션이라는 회사에 경영진/임원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임원급 인력을 채용하는 회사의 기댓값은 무엇일까요? 해당 임원이 과거에 가지고 있는 성공을 우리 회사에서 재현해 주길 기대하는 것이 채용 사유입니다.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 그 성공을 새로운 환경에서 또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현재 재직 중인 인티그레이션에서 저를 채용했을 때에는, 제가 이전 경력인 원티드랩에서 시리즈 B부터 상장 이후 단계에서 신사업을 성공시켰던 그 경험을 이 회사에서 재현하길 기대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들, 판단 근거들, 기대치와 우려들이 있었겠지만요.
이렇듯 임원, 리더, 시니어가 되면 될수록...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 그 성공 경험을 새로운 곳에서 재현할 수 있는지 (재현 가능성)가 중요해집니다. 임원/리더/시니어급 인력을 채용할 때에는 몸값도, 기댓값도 높은 만큼 가지고 있는 스킬과 경험, 잠재력을 꽃피워서 언젠가 성공하기를 기다려 줄 순 없습니다. 단기간 내 성공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성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결국 과거에 다른 곳에서 보여줬던 '성공'이라는 열매를 새로운 곳에서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핵심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재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까요? 저 또한 이 부분에 도전을 하는 과정에 있기에 확신은 없습니다만,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 번째는 여러 번의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번의 성공 경험은 우연히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여러 번이 성공 경험은 본인이 확실한 실력, 특히나 성공을 재현해 낼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최고의 롤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중 한 명인 더샤이(TheShy) 강승록 선수는 이러한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세 번의 우승은, 제 목표기도한데.
첫 번째 우승은, 실력이 좋을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그 상황이 운일 수도 있기 때문에.
두 번째 우승은, 그 첫 번째 우승이 운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고요.
세 번째 우승은, 진짜 자신이 실력 있는 사람이다. 이 팀이 실력 있는 팀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겁니다
너무나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사실 한 번의 성공을 하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 과정을 모두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역량과 노력은 당연하고, 운이나 환경 등 본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요소도 크게 작용합니다. 이렇게 한 번의 성공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성공을 재현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일론 머스크처럼 상이한 회사/산업군/환경/상황에서 또다시 성공을 재현해 내는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 번의 성공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는데 도전해야 하고, 만약 당신이 채용 과정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채용해야 합니다.
여러 번의 성공 경험을 가지는 것이 '재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운 적인 요소들도 많이 개입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 번의 성공 경험은 없지만 재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재현 가능성이 높은 두 번째 유형은 한 번의 성공 경험이어도 그것이 '프레임워크'로 잘 정리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업무 과정에서 반복적인 회고를 통해서 성공의 요인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하면 앞으로 성공을 재현하거나 더 잘할 수 있는지가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언제든 꺼내어 쓸 수 있고 누군가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회고와 정리의 과정에서 이론적 공부와 프레임워크가 효과를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하고 있는 전략, 재무의 영역에 있어서는 OKR, 그로스해킹, 데이터 기반 사고 체계, 4P나 SWOT과 같은 경영학 프레임워크나 이론 같은 것을 잘 알고 있다면, 제가 가진 경험들이 훨씬 더 체계적으로 정리될 것입니다. 좋은 프레임워크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나의 성공 경험이 다시 프레임워크에 의해 잘 정돈이 되어 있으면 결국 다시 성공을 재현해 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성공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성원 2명이 있다고 해도, 누군가는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A부터 Z까지 직접 경험하면서 체계적으로 경험이 정돈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후자가 훨씬 더 재현해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면접의 과정에서 이러한 프레임워크가 얼마나 잘 자리 잡혀 있는지 검증을 해야 할 것이며, 반대로 커리어를 쌓는 우리 모두는 한 번의 성공경험이라도 단단하게 정리되어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는 지식으로 만들어 놓아야겠습니다. 커리어 관리의 세 번째 키워드는 "재현 가능성"입니다.
만약 내가 아직 역량과 경험이 충분하지 않아서, 혹은 신입이나 주니어급이라면 채용이나 평가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스킬', '성공 경험', '재현 가능성'을 어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내가 지금은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잠재력"입니다. 앞서 언급한 3가지 키워드가 더 좋지만, 아직 부족하다면 어필해야만 하는 또 다른 중요 키워드입니다.
특히나 여러분이 아직 신입이나 주니어라면 이러한 부분을 더욱 어필해야 합니다. 내가 아직은 시간과 경험의 기회가 부족해서 스킬, 성공 경험, 재현 가능성은 없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반드시 그것들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근거도 제시할 수 있어야겠고요. 반대로 15년 경력을 가진 저 같은 사람이 잠재력을 어필한다면 그것만큼 안쓰러운 일도 없습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커리어 관리의 비법을 설명할 정도로 제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특별히 어떤 키워드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쌓아오지도 않았고요. 그렇기에 이러한 글을 적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더 훌륭한 누군가가 보았을 때 얼마나 우스워보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원티드라는 채용 플랫폼에서 근무하면서, 혹은 리더로서 일하면서 많은 이력서를 검토하고, 채용하는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누군가를 평가하고 보상, 승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렴풋하게 커리어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스킬, 성공 경험, 재현 가능성, (+잠재력)이라는 키워드들도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커리어를 디벨롭하셔야 할지 고민이 되시는 분들, 면접이나 평가를 앞두고 계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커버 사진: Unsplash의 Jukan Tatei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