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포 떼고 붙지 마세요
어떤 술자리에서의 대화였습니다. 예전에 저와 같은 팀에서 일했던 두 사람과 저까지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패기 넘치는 동생 A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차포 떼고 붙으면 제가 다 이길 수 있어요!"
노련한 형님 B는 이렇게 답을 하시더군요.
"A야, 차랑 포가 얼마나 중요한데 왜 떼고 붙냐. 차포를 가져다가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지."
별생각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더군요.
보통 우리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 사람이 사실 이것만 빼면 나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사실 내가 더 낫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 빼야 하는 것은 때로는 돈이나 학벌이 되기도 하고, 인맥이나 이력, 출신배경, 영어 실력, 소속 조직 등이 되기도 합니다. 불평등해 보이는 몇 가지 조건들을 걷어내면 사실 내가 상대방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A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XXX도, YYY도 다 없이 나 혼자만의 오롯한 능력으로 성공할 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배경이나 다른 조건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정정당당하다고도 볼 수 있고, 낭만 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40대가 된 지도 몇 년이 지나고 커리어를 쌓은 지도 15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나란 사람은 주위로부터의 수많은 영향들, 상호작용들, 배경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것저것을 다 뺀 진정한 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실은 내 실력 또한 어차피 다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학습하여 길러진 것인데, 그런 배경들을 다 걷어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이 세상은 게임이나 가상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인데, 배경과 조건들을 모두 걷어낸 진짜 알몸으로서 실력을 부딪힐 일이 있을까요?
메시와 호날두 중 누가 더 뛰어난 선수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둘이 같은 팀이었다면 어땠을까?', '메시가 잘한 것은 이니에스타 덕분이다', '호날두가 잘한 것은 레알 마드리드 팀 빨이다'처럼 말이죠.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즐거운 주제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바르셀로나라는 팀 안에서의 메시와,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 안에서의 호날두가 있고 그 둘이 경쟁하는 것이죠. 메시와 호날두를 단독으로 비교하는 것은 얼핏 보면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Football Manager와 같은 게임 속 능력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11명이 팀으로 경쟁하는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이므로 그 둘을 단독으로 비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팀 안에서, 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골을 넣는 것, 골을 넣는 것을 넘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죠. 좋은 팀에 가고, 좋은 동료를 만나고, 그들과 시너지를 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결국 그것을 해낸 사람이 우승을 할 수 있습니다.
메시와 호날두, 축구 경기로 예를 들게 되어 '팀'을 이야기하게 되었을 뿐, 실제로는 꼭 팀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내 지적인 능력과 체력, 정신력과 정서적 능력, 내가 가진 인맥/학연/지연/혈연, AI 같은 도구의 활용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활용하여 우리는 일을 하고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모두 떼어내고 알몸으로 경쟁하는 것이 공정해 보이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럴 일은 없습니다.
차포 떼고 붙는 것이 아니라 차도 붙이고, 포도 붙이고, 남의 것도 빌려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장기말을 모으고, 때로는 빌려서라도 잘 활용하는 것이 나를 게임의 승리자로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차포 떼고 붙지 마세요. 어떻게 하면 차포를 하나라도 더 확보할지, 잘 활용할지를 고민해 보세요.
당신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자산을 쌓아왔나요? 그리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인가요?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을 던져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당장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