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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방점을 찍어야 한다.

Connecting 이전에 Marking Dots가 중요해.

by 백승엽

성장의 방점을 찍는 것. 언제든 꺼내어 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다.

여러분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던 기억이 나시나요? 저는 부족한 운동신경에 고생하면서 엄마랑 연습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새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지 30년 정도가 지났고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 것도 5년은 넘은 것 같지만, 당장 지금 자전거를 타게 되더라도 마치 최근까지 자전거를 타왔던 것처럼 큰 무리 없이 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5분, 10분은 버벅거리겠지만 신기하게도 이내 익숙하게 탈 수 있게 됩니다. 비단 자전거뿐 아니라 오랜만에 다시 함에도 생각보다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역량들이 있습니다.

"성장"이라는 것, "배움"이라는 것은 그런 역량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그 역량을 꺼내어 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여 꾸욱 방점을 찍는 것이 성장입니다.


image (50).png 넷플릭스 ‘피지컬: 100’의 ‘시지프스의 형벌’ 게임


성장은 무거운 돌을 굴려 정상까지 도달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열심히 돌을 굴렸지만 결국 언덕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고 멈추어 버린다면, 돌은 다시 바닥으로 굴러내려가 버립니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지만 성장이 완수됩니다.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멈추어 버린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경험'에 머무릅니다.

정상까지 돌을 옮기는 과정처럼, 성장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일정 이상의 노력과 고통을 수반합니다. 덜컹덜컹 삐걱거리면서 언덕을 오르는 시간, 집중적인 노력을 투입하는 시간이 요구됩니다. 언덕을 오르는 시간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노력 끝에 언덕에 한번 오르게 된다면, 나는 오롯한 성장을 한 것이고 그 역량을 언제든 꺼내어 쓸 수 있게 됩니다. 한번 자전거를 배우면 이후에도 곧잘 탈 수 있게 되듯이, 다시 언덕을 내려올 일은 없습니다.


무거운 돌을 굴려 언덕에 오른 제 경험 몇 가지를 공유해 봅니다.

올해 초에 코칭 KAC(Korea Associate Coach)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자격증 취득 요건 중 50시간 이상의 코칭 실습을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요, 평소에 그렇게 많은 1on1 면담을 하였음에도 처음 코칭 실습을 할 때는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버벅대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50시간의 실습을 마치니 얼추 코칭 느낌을 낼 수 있는 코치가 되었고요, 자격증 시험을 취득한 이후에는 실습을 많이 하진 않지만 언제든지 '코칭' 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가지고 있습니다. 50시간의 실습이라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저를 일정 수준 이상의 반석에 올려놓았습니다. 한번 그 반석에 올라가니 저는 코칭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주 하고 있는 자기 계발 모임 Project One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팀장이 되고 나서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생긴 이후에 해당 모임에서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3분기 동안 리더십을 위한 노력만 하였습니다.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고, 스터디를 조직하고, 스스로를 회고하고, 글을 썼습니다. 물론 여전히 리더로서 더 성장해야 할 여지는 끝도 없이 남아있지만, 그 시간 이후에는 적어도 나쁘지 않은 리더의 수준에는 도달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리더십에 대한 고민은 남아있고 때때로 실패하지만,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 수준의 이상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대 케이스) 습관성 자기 계발

앞에서 언급했듯이, 어떻게든 언덕에 올라서면 '성장'이 되지만 노력은 하였지만 끝내 언덕을 넘어서지 못하고 멈춰버린다면 내 돌은 다시 바닥으로 굴러내려 갑니다. 노력은 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험도 쌓였지만 내 성장은 완성되지 못한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에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특히나 스타트업씬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직업적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항상 자기 계발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지 않은 사람도 꼭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쌓여 있고요. 이런 현상을 두고 '습관성 자기 계발'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어, 데이터, AI, 운동, 코딩, 기획, 마케팅, 리더십... 배우고 학습해야 할 주제는 끝도 없이 많습니다. 각 주제들에 쏟아붓는 시간들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의 끝에 "아~ 이것은 정말 내 것이 되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부터 제대로 공부한다면서 '수학의 정석' 첫 번째 챕터인 '집합'만 다섯 번, 열 번을 보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릅니다. 제대로 공부를 했다면 첫 번째 챕터를 마스터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챕터로 넘어가야겠죠. 하지만 제대로 정복해 내지 못했으니, 다시 보면 마치 처음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ZoMoyyWaLmpyNnH72bmSiD6ZKSjElA2zVIMm05Sc3tvCLR1hRNvA320D4rgPnGU9bGFKxc5-w4RtrtdTxEsXlw.webp '수학의 정석' (설마 요즘도 이걸 공부하나요? )



Connecting the Dots의 함정

Marking Dots가 먼저이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 중 하나인 "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너럴리스트로 성공하길 바라왔던 저에게는, 제가 과거에 걸어온 여러 점들이 언젠가 연결되어 빛을 발할 것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든든한 버팀목 같았습니다. 딱히 자신 없는 내 전문성이나 꼬여버린 듯한 내 커리어가 언젠가 멋지게 연결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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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여전히 "Connecting the Dots"의 의미를 믿습니다. 15년의 커리어 과정에서 혹은 그 이전부터 쌓아놓았던 이런저런 경험들이나 인연들이 이렇게 저렇게 연결이 되면서 힘을 발휘했던 경험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Connecting the Dots"의 함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Connecting the Dots"의 함정은 일단 제대로 된 점 (Dots)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점이 일단 깊고 선명하게 찍혀 있어야지 그것들이 연결이 되면서 (Connecting) 멋진 그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해당 스탠퍼드 졸업 연설에서 본인이 리드 칼리지를 중퇴를 하였기에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때 들었던 캘리그래피 수업 내용이 이후에 맥킨토시 컴퓨터에 아름다운 글꼴과 서체를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처음 연설을 들었을 때는 모든 것이 어떻게든 연결된다라는 "Connecting"에 집중하여 들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또한 그 부분을 강조하고요.

하지만 마흔 줄에 넘어든 지금은 스티브 잡스가 캘리그래피 수업을 얼마나 열심히 들었기에 그 내용을 10년 뒤에도 써먹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10년이 지난 후에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한 점을 찍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연결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Connecting"은 중요한 가치입니다만, 또렷하게 점을 찍는 행위 "Marking Dots"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단 Marking dots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글의 서두에서 말했던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돌을 굴려서 언덕을 올라가는 이야기, 자전거를 타는 이야기, 수학의 정석 챕터 1만 공부하는 이야기,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 등 이런저런 비유와 예시를 참 많이 들게 되는 글인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예시들은 많지만 결국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너무 간단한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몇 줄로 요약되네요.

무언가의 역량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어서 성장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고통스럽고 집중적인 노력을 통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만 비로소 "성장"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시 "0"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이 글을 쓰는 저 자신에게 '네가 확실하게 찍은 방점이 뭐야?'라고 스스로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니 부끄럽고 무서운 마음이 듭니다. 성장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픈 마음에 글을 썼지만, 스스로에게도 서늘한 경계심을 남기면서 글을 끝맺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도, 저도 고통스럽지만 더 많은 성장의 방점을 찍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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