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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Jan 14. 2024

12.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해가 바뀌어도 진행형인 소음 지옥.

마음을 다지며 버텨 보려 애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벅찰 때를 위한

계속해서 살아 나가기 위해 쓰는 소음 일지.



<2023년 12월 18일, 월요일>

아침부터 '우르르쾅쾅'하는 소리와 문을 '쾅!' 닫는 소리에 깼다. 한 시간 남짓한 발소리에 분노했다가 졸듯이 정신을 놨다가를 반복하며 점차 분노 게이지가 쌓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온몸에 분노가 가득했다. 남편이 괜찮냐며 물어볼 정도로 나는 멍했고, 분노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이렇게 지랄들을 해 대는데, 왜 나만 배려하며 살아야 하는가? 왜 나만 눈치 보며 조용히 살려 노력해야 하는가? 어쩌다 위아래로 이런 집들을 만나게 된 걸까.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어찌할 줄을 몰라 홀로 부들부들 떨었다.


지도에서 정신의학과를 검색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잠시만 정신줄을 놓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정신의학과는 상담보다는 약 처방을 우선시한다는 말에 심리상담센터를 검색해 내일로 예약을 잡았다. 지금 당장 가고 싶었지만, 일단 예약을 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았다.


계속해서 걸어 다니며 문을 쾅쾅 닫아대는 윗집 때문에 신경이 더 곤두섰다. 당장 쌍욕을 퍼부으며 천장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다. 기록을 남기는 이 순간(12/18 당시)에도 심장이 벌렁벌렁 댄다, 화가 나서.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데 다시 '쾅!'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적당히 좀 해라...'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어찌할 방도가 없어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

나는 더 문명화된 사람이다.

나는 더 성숙한 사람이고, 더 된 사람이다.

나는 훨씬 더 나은 사람이다.

저런 덜 된 사람들과 똑같아지지 말자.

편도체의 지배에서 벗어나 전두엽을, 감정적 뇌가 아니라 사고하는 뇌를 사용하자.


감정을 말로 뱉으면 전두엽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감정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러다가 다시 뭐든 소리가 들리면 편도체가 활성화 되겠지만, 연습을 해야겠지. 늘 이렇게 분노로 가득 찬 채 살 순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약간은 낙관적인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늘 저녁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제 그렇게 종일 난리를 쳤는데, 오늘 저녁이라고 다를쏘냐.


노력하겠다고, 신경 쓰겠다고 말하고 올라간 게 겨우 일주일 전이다. 약효가 겨우 일주일 지속될 뿐이라니. 어제의 그 모든 소리는 아이를 방목하지 않고서는 날 수 없는 소음이었다.


본인이 괴롭지 않으니 자기들 발 밑에서 누가 얼마나 괴로워하며 죽어가는지는 중요하지 않겠지. 내 아이가 뛰어놀지 못하는 것만 불쌍해 보이겠지.


나는 저들과 다르다. 더 나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되뇐다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마음 같아선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 복수하고 싶다. 그러나 방법은 없다. 층간 소음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처벌받는 시대가 아닌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천장을 두드렸다고, 스피커를 틀었다고, 찾아 올라갔다고 처벌받는 세상 아닌가. 온 세상 사람이 꼭대기 층에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체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


하루에도 롤러코스터를 몇 번이나 타고 오르내리는지 모르겠다. 낙관적이었다가, 절망적이었다가. 다시 약간의 낙관, 다시 거대한 비관. 지친다.


편두통이 재발한 것 같다.

심리 상담을 받고 신경과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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