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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Jan 23. 2024

16. "아파트 살면서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해가 바뀌어도 진행형인 소음 지옥.

마음을 다지며 버텨 보려 애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벅찰 때를 위한

계속해서 살아 나가기 위해 쓰는 소음 일지.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아침부터 아이가 아주 활발하게 뛰기 시작했다.

어차피 일어나야 했지만, 아침을 분노와 애써 인내를 위한 노력으로 시작하는 기분이 어떤지 이들은 절대 모르겠지.


아홉 시 반, 집을 나서려는데 우렁차게 다시금 아이가 뛰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적당히 좀 뛰라고오오옥!!'이라고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내가 그렇게 악을 쓰듯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놀랐다. 그가 분노하기 시작했다. 월패드로 윗집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기... 발망치 소리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다음부턴 적반하장의 향연이었다. 대체 저희가 뭘 어떻게 하면 되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윗집 아줌마가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몇 백만 원을 들여 매트도 깔았고, 어린애를 아침에 데리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온다고 한다. 한 달 전, 편지를 받은 뒤 내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 그저 구체적인 금액이 더해졌을 뿐이다.


몇 백만 원을 들여 매트를 깔았다는 사실이 거실이 마치 운동장인 양 아이가 뛰도록 놔둬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매트가 만능 솔루션은 아니다. 심지어 뉴스에서 소음방지매트에는 소음을 100% 차단하는 효과가 없다는 리포트를 제작해 방송한 적도 있지 않나.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아이는 뛰었다. 천장에서도 들리고, 월패드를 통해서도 '야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지금도 아이가 뛰고 있지 않느냐'라고 하자 아줌마는 이렇게 아이를 진정시켰다.


'가만히 있어 보세요~'


이 지점에서 지난번 나에게 했던 말이 100% 진실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며 뛰지 못하게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은 거짓이었다. 엄마가 저런 식으로 말하는 데 아이가 집에서 뛰는 행동이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리 만무했다. 그리고 다시 서로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갑자기 이런 말이 돌아왔다.


'아파트에 살면서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예?

예??


지금 우리 '그깟 애 뛰는 소리도 못 참는 사람들'로 매도당한 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해야 할 소리를 지금 누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 댁이야 말로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 너무 한 거 아닌가. 당신들 발아래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매트 깐 거, 그래 좋다 고맙다. 그렇다고 해서 아래에 아무도 없는 양 뛰어도 되는 건가? 층간 소음 후기에서나 읽던 그 대사를 직접 들으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기가 찼다.


'저희 아내 지금 정신과 다니면서 우울증 약 먹고 있어요.'

'저희도 주말에 쉬어야죠.'


멀찍이 떨어져 듣고 있던 나는 끈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살려달라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저희는요? 저희는요?! 저희도 주말에 집에 있어요. 저희도 살아야죠!! 좀 살게요, 제발 살게 해 주세요. 살려주세요 좀!!!'


상대방은 대꾸가 없었다. 물론 주말에 쉬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가 무장해제되어 온 집안을 들쑤시는 동안 그것을 고스란히 듣고 있어야 하는 당신들 발아래 사는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월패드에 다가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정리를 하려 했다.


'어머님, 예 애가 뛸 수 있죠. 그런데 저희도 힘들어서요. 자제 좀 시켜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도 주말에 나가고 그래요.'

'저희도 주말에 집에 못 있....'

(뚝)


?????

지금 전화를 끊은 건가? 그런 거야?




심장이 미친 듯이 질주하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손이 미친 듯이 떨렸다. 급하게 진정제를 뜯어 떨리는 손으로 겨우 입에 털어 넣었다. 미친년처럼 약을 찾는 그 모습에 내 남편은 안타깝게 지켜보는 것 외에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또 인간성을 믿고 있었다.


'저희도 좀 더 이해하며 적응하려 할 테니 어머님도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예, 죄송해요.'


라는 한 달 전 대화 이후 저들은 점차 우리를 잊어 갔는데, 나만 인간성을 믿고 붙들고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결국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


과장처럼 들리겠지만, 그 순간 인류애를 잃었다. 저 아줌마 한정으로 잃고 싶은데, 그냥 모든 인간에 대한 인류애를 잃었다. 사람이 너무 싫었다. 이 공간도 싫었고, 이 아파트도 싫었다. 다 싫었다. 그저 사라지고 싶었다.


정신과에서 받은 필요시 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전쟁은 상대방이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맞받아치고 싶어도 지금 내겐 심신에 그 어떤 힘도 남아 있지 않다. 바닥난 배터리의 바닥의 바닥을 긁어 겨우 분노할 뿐이었다.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않는다라고 그렇게 매일같이 스스로 되뇌면서도 나는 저들이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진이 쏙 빠졌다. 안하무인, 적반하장, 뻔뻔함과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고 입 밖으로는 쌍욕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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