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후를 빌려 걷는 삶

빼앗기지 말라 독려했던 엄마의 노후를 빼앗은 건, 나였다.

by Sunyeon 선연


“엄마, 이건 엄마 노후 자금이잖아. 누구한테도 빼앗기지 마.”


몇 년 전, 금전적으로 모든 것이 여유롭던 시기에 나는 엄마에게 그리 일렀다. 동생의 결혼 이후 무언가를 더 해주고 싶어 하시던 엄마에게, 이제는 당신의 몫을 더 챙기시라며 조언 아닌 조언을 드렸던 어느 해의 봄이 아릇하게 떠올랐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재의 내 상황이 너무나도 드라마틱해서, 이 현실이 더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이미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머니에게서 독립을 한 이후였고, 딱히 부족할 것이 없었다. 곁을 지키는 가족도 있었고, 돌아가 쉴 전셋집도 있었다. 일이 고되어서 쉬는 날이면 겨우 손가락을 튕기며 도파민을 찾곤 했다. 화면 속 물건들을 클릭해 사들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취향껏 고른 물건들이 집 안 여기저기를 잠식해갔지만,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사들였다.


취향껏 샀던 물건들이 짐이 되어버린 좁은 방 안에서, 나는 이제 내일의 생활비를 걱정하며 엄마의 연락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이혼한 후 작은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기며 많은 물건을 버렸다. 가져온 짐들을 다 채울 수 없어 이틀 내내 박스들을 집 안으로 들이지도 못했던 지난해 봄을 기억한다. 남기고 싶었던 게 뭐가 그리 많았던 걸까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무엇이 그리 부족하고 간절해서 취향들을 늘리는 데 시간을 허비했던 걸까. 좋아 보였던 이전의 취향들을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덩어리째 털어 넣으며 쓴웃음을 짓던 어느 날엔 차마 몰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금융사기’라는 해일이 닥치기 전까지, 차라리 일상은 잔잔한 파도 같았다.


친구의 이름을 빌려 닥친 해일은 너무나 강력했고, 내 힘으로 벌어들인 모든 자산을 전부 휩쓸어 갔다. 손에 갖고 있던 전재산을 반나절만에 잃었고, 3000이 넘는 카드빚이 생겼다. 처음으로 빚쟁이,라는 타이틀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나는 헛똑똑이였나, 그동안 살았던 내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피눈물로 얻었던 퇴직금도 알음알음 모아 겨우 내 것이 되었던 '돈'들도 결국은 공중에 흩뿌려지듯 없던 '숫자들'이 되었다.


“엄마, 나 …….”


울면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날은 아침이었는지 오후였는지 시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느 초여름이었다. 경찰서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전화를 건 딸의 목소리를, 엄마는 어떤 표정으로 받았을까. 어쩌다가 그랬느냐고, 다 아는 녀석이 왜 그랬냐며 채근하는 말투로 나를 꾸짖다가도, 결국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폭 쉬어주던 엄마. 그 한숨의 무게가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게 떠오른다.


여름은 누구도 모르게 길었다. 뜨거웠고, 치열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로 뒤덮였던 시간들 때문에 페이지들은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툭 건드리면, 혹여 한 글자라도 더 쓰면 찢겨 나갈 페이지처럼 작년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가을 즈음이었을까. 나를 안쓰럽게 보던 엄마의 눈길이 조금 덜 무거워졌을 때쯤이었나. 엄마가 조용한 무게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엄마가 아끼는 거야. 그래서 딸 주는 거니까 써.”

“엄마, 이건……”

“임영웅이 이번에 연금 모델이라더라. 그래서 카드 만들었어.”


임영웅 이야기만 나오면 소녀처럼 웃으시던 엄마. 엄마는 그렇게 해사하게 웃고 있는데, 나는 그 웃음에 차마 답할 수가 없었다. 연금이라니. 내가 언젠가 “이건 엄마 거니까, 누구한테도 빼앗기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던 그 '노후자금’이라니.


카드를 받아 들고서도 나는 몇 개월 동안 그것을 쉬이 사용할 수 없었다. 엄마가 왜 카드를 쓰지 않느냐고 물을 때까지도 그랬다. 엄마의 노후를 앗아가는 것만 같아 차마 손댈 수 없었다. 연금은 매달 말일에 일정한 금액으로 입금되었고, 그건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생이 어머니에게로 이어진 오롯한 ‘어머니의 것’이었다. 생활비가 곤궁했지만, 그걸 써버리면 엄마의 일부를 빼앗는 못된 딸이 되는 것만 같아 가을과 겨울을 그렇게 앓으며 보냈다.


나 혼자도 건사할 수 없는 삶. 가장 저렴한 것을 장바구니에 담고, 고정 지출을 걱정해야 하는 삶. 모든 것을 최소한의 옵션으로 바꾸고 구독 서비스들을 해지하며, 치장을 위한 것들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몇천 원을 쓰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던 그 서늘한 시간 속에서, 엄마는 내 어깨를 조용하고 조요하게 두드려 주었다.


“수정아, 카드 편하게 써. 그거 쓰면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대.”

엄마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아주 우아한 방법으로 나를 일으켰다.

비참하고 어두운 터널의 굴레를 터덜터덜 기어 나온 나에게 그 말은 마치 소실점 끝에 보이는 햇볕 같아서

나는 마음이 잠시 시렸다.

“응, 그럴게.”

대답하면서 눈물이 났다. 절뚝거리며 걸어도 괜찮아, 하고 엄마가 나를 위로하는 것만 같아서.


내가 절대 빼앗기지 말라며 허울 좋게 말했던 엄마의 연금은 지금, 무너진 나를 살리는 아주 다정하고 강력한 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슬프고도 아름답고, 감사하면서도 애틋하며, 쓸쓸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이 복잡하고 거대한 마음을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의 내가 몰랐듯,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걸어나갈지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작은 우주의 먼지일 뿐이고, 내일의 날씨조차 예측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크게 넘어졌다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일어선 경험은 내 마음의 연골을 굳건하게 하고, 연약한 발목과는 다르게 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돌아보니 감사할 일들이 도처에 있었고, 나는 지금 천천히 엄마의 노후를 빌려 걷고 있다. 그동안 몰랐던 것은 아니나, 바닥에 엎어져 보니 비로소 누군가에 대한 짙은 감사함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이제는 이전보다 더 자주, 그 마음을 밖으로 꺼내어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아프게 넘어진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고 이제는 누구에게라도 담담히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 이 순간, 이 페이지를 읽고 있는 당신의 다정한 시선 끝에 나의 서툰 걸음이 잠시 머물렀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기적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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