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법.

발목 부상이 알려준 속도의 미학

by Sunyeon 선연


발목 부상을 온몸으로 맞이한 지, 벌써 4년 차로 접어들었다. 내 부상의 시작은 ‘분리수거’였다.

내 몸만 한 박스를 들고 내려가다가 계단 턱을 보지 못하고 우르르 넘어져 버린 것이 비극의 서막이었다. 환부는 일시적으로 퉁퉁 부어올랐다. 붓기가 제법 심하기는 했지만 통증이 ‘엄살을 부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스타벅스에 다니던 당시 다음 날 오픈 조 출근을 양말 안에 아이스팩을 넣은 채로 해냈고, 호기롭게 ‘반깁스’와 함께 조퇴했던 기억이 난다.


넘어져서 인대가 나갈 수도 있구나.


내 부상을 허투루 본 결과는 한 달의 ‘업무 외 상병’으로 돌아왔다. 한 달여의 기간 동안 나는 흩어져 있던 일상의 주변을 정리하고 정돈할 시간을 얻었다.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른 기분이었다. 시간은 빨리 흘렀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에야 얻었던 자유였기에 무엇보다 소중했다. 기꺼이 멈춰 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야기가 여기에서 ‘그랬답니다’ 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2023년 10월, 여행으로 방문했던 부산의 어느 지하철 역사 계단에서 한 번 더 굴러 떨어져 발목을 다쳤다. 근처 병원을 힘겹게 찾아 골절은 아니라는 소견을 얻었지만, 여행 내내 절뚝거려야 했다. 발목 보호대는 꼭 하고 다냐야 한다는 말을 “추운 날에는 목도리를 꼭 해야 해요” 정도의 조언으로 받아들인 나는 2024년 3월, 스타벅스를 퇴사할 때까지 살인적인 강도의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발목을 고스란히 맨 상태로 두었다. 그때는 괜찮은 줄 알았다. 딱히 환부가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특별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정말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반깁스를 권유받지도 않았으니 스스로 그 부상을 조금 쉽게 여긴 것이리라.


일을 쉬면서 발목이 지르는 비명을 듣기 시작한 것은 작년 늦여름 즈음이었다. 하루에 네 시간, 그리 긴 시간을 일하는 것도 아닌데 환부가 부어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한의원을 찾았다. 만성 발목 불안증. 여러 번 붙였다 떼었다 한 포스트잇처럼 내 발목 인대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약해져 있었다. 조금만 무리하면 통증이 느껴졌고, 보호대를 하지 않으면 근무가 힘들 정도였다. 그제야 ‘내 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구나 ‘생각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나빠지고 난 다음이었다. ‘이래서 다들 후회는 늦다고 말하는 걸 거야.’ 약침을 맞고 테이핑을 한 환부를 보며 빈 눈으로 중얼거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구직 지원금이 끊기자, 나는 슬슬 풀타임 잡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12월은 공고를 여러 건 들여다보는 시간들로 보냈다. 책을 냈고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당장 생활을 위해서는 생활비가 필요했기에 다른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

몇 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마흔이 넘어버린 내가 있을 곳이 많지 않았다. 이력서는 번번이 반려되기 일쑤였고, 어느 곳에선 열람조차 되지 않은 채로 사장되었다.

슬픈 현실이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발목은 나을 생각이 없고, 현실은 너무 추운데 내가 있을 곳은 많지 않았다. 한계는 명확했다.

어쩔 수 없이 일하던 곳의 근무 시간을 늘리고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어 생활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고맙지만 미안하고, 미안하지만 짠하며, 짠하지만 한편으론 비참하다.

그러면서도 놓을 수 없는 동아줄 같은 것. 없으면 당장 다음 달의 생활을 담보할 수 없는 것. 나는 지금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제법 느린 걸음으로. 누군가는 “산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봐!” 하고 말했다. 나는 쓰게 웃었다. 언젠가 이 고마운 마음을 다 갚고 눈 감을 수 있을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자리에서 걷는 것을 멈추는 건 나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최근에는 발목 보호대를 양말 안에 신는 조금 얄팍하고 좋은 것으로 바꾸고, 인솔(깔창)도 새것으로 샀다. 일할 때 어김없이 통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발을 질질 끌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한쪽 발의 통증이 상당하기에 무심코 반대쪽 다리에 힘을 많이 주게 된다. 양쪽의 불균형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 자세히 보면 조금 절뚝거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지만, 이제는 부러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만약 두 번째 사고 때 내가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쉬었더라면 지금 조금 더 나은 상황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는 것이 더는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있으니까.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예의는 더 이상의 후회를 멈추는 것, 그것뿐이니까.


요즘은 내 발목을 위해 조금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친구 말마따나 가끔은 느리게 산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당장 내일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오늘의 내가 어떻게든 걸어 나갈 것이다.

걷고픈 의지만 꺾이지 않는다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스스로를 다 챙겨 먹이기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이것조차 인생이고 이것 또한 삶이니까.

어느 자리에 있다고 해도

내가 나라는 사실을 잊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만약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에 서 있다고 해도, 어쨌든 앞으로 앞으로 걷고 있는 당신의 삶을 긍정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글을 적는다.

어느 자리에 있대도

당신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잊지만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다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