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 글도, 너무 누르면 쓴 맛만 난다.

일상의 탬핑에서 발견한 적당한 밀도의 온도

by Sunyeon 선연

작년 늦여름, 짧은 시간이라도 파트타임을 해야겠다 마음먹은 곳은 공교롭게도 또 카페였다. 다시 스타벅스에 돌아가는 악몽을 끝도 없이 꾸던 9월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꿈은 꾸고 있지만. 처음에는 설거지 정도만 하는 가벼운 잡무 정도로 시작해 일주일에 여덟 시간 정도를 일했다.


마감 타임. 누군가들은 각자의 전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아직 해가 낭낭한 하늘을 보며 출근버스에 올랐다. 집과 멀지 않은 거리였다. 여섯시부터 열시까지. 처음에는 들어오는 트레이를 정리하고 단순히 설거지를 하는 업무만 했지만, 보름 정도 지나자 설거지 하나로는 시간이 남아돌아 해야 할 일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쇼케이스 밑 물을 비운다던지, 서비스 테이블의 필요한 물품을 보충한다던지, 제빙기 아래 트레이를 살핀다던지 하는 디테일들을 차츰 챙기게 되었다. 그러면서 항목이 붙은 루틴들이 몇가지 생겼다. 단순 파트타이머지만, 내 일에 자부심을 갖게 해 줄 정도의 '루틴'이었다.


몇 시까지는 행주 침지를 끝낼 것, 몇 시엔 블렌더기를 마감할 것, 적어도 점내 마감 10분 전까지는 식기세척기 드레인을 위해 설거지를 마칠 것. 트레이를 놓고 가시는 고객님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할 것. 손님들의 추이를 보며 정수통을 청소하고 여유가 있으면 딥클린 할 곳 도장깨기를 할 것. 그렇게 루틴을 만들면서 얻은 건 경험과 익숙함이었고,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스타벅스 경력자라 그런지 다르다. 업무가 빠르다"는 말을 들으면 멋적게 웃곤 했지만 속으론 매우 기뻤다. 작은 성취감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작년의 상처를 기울 힘을 얻었던 곳이 지금의 직장이다.


올해가 되어서는, 파트타임 바리스타 제의를 받았고 꽤나 갑작스레 업무에 투입이 되었다. 짧은 설명을 듣고 포스를 보고, 간단한 논커피 음료를 제조했다. 모니터를 보며 콜링을 하고 음료를 찾으러 오신 고객에게 웃으며 응대를 했다. 보름정도 해 보니 서글프게도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물론 어설픈 순간들도 있었다. 여긴 스타벅스가 아니고, 나는 이 곳에서 바리스타가 처음이니까. 처음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나 가혹한 시간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 곳에서의 일들은 즐거움과 보람이 더 커서, 그 미지의 스트레스마저도 미지근하게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친절하다는 응답이 돌아오거나, 웃으며 같이 인사해주시는 분들. 그 곳에서 에너지를 얻었던 언젠가의 내가 아직까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그럼 그렇지 싶어 웃음이 나다가도 한편으론 조금 슬펐다. 서비스직을 17년 이상 하면서 그렇게 데이고도 아직도 사람이 좋다니. 징그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 걸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2주 전에는, 갑자기 매장에 결원이 생겼다. 그래서 정말 또 '갑자기' 풀타임 바리스타로 투입이 되었다. 느닷없이 생긴 근무 연장이었다.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앞섰다. 매장에서 '블랙이글' 머신으로 음료를 제조하는데, 기계식 머신은 집에 있는 가정용 머신을 다뤄본 게 다여서, 샷 뽑는 법도 모르는 채였기 때문이다. 덜 나은 발목에 새로 산 인솔과 발목보호대를 착용하고 비장하게 출근했던 날. 도징된 원두가루를 포터필터에 걸고 툴을 사용해 커피입자를 고르게 한 뒤 샷을 추출하는 방법을 배웠다. 모르던 바는 아니지만, 큰 머신 앞에서 괜시리 살짝 위압감이 들었다.


그런데 직접 내 손으로, 그 작업을 해 보니 내가 이적지 종종 해왔던 그 감각이 아득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저울을 켜고, 영점을 잡고, 도징된 원두를 담아 무게를 재고, 툴을 사용해 원두를 고르게 하는 그 작업이. 잘 골라진 입자의 원두가루를 필터구에 조심스레 결합하고 샷 버튼을 누르는 그 생생함이.


그람수에 따라, 때로는 머신의 컨디션에 따라 추출되는 샷은 천차 만별이었다. 어떤 것은 20초를 채 채우지 못하고 떨어져버리곤 했고, 꽉 눌러 실수로 두 번 탬핑한 샷은 너무 써 마시지도 못하고 뱉었다. 여러번 샷을 뽑으면서 배운 것은 커피양과 비율도 중요하지만, 입자를 잘 눌러주는 '탬핑'이 중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꽉 누르면 탬퍼에 입자 가루가 많이 붙어 나와 도징량에 미세한 차이가 발생해 샷이 맛없어지기도 하고, 덜 누르면 예쁜 커피퍽이 만들어지지 않더라. 정확하고 조밀한 밀도의 탬핑을 해 줘야 좋은 샷이 나온다는 걸 알았다.


머신 앞에 서서, 하나 둘 셋 아무도 모르게 양을 세면서 커피도 글도 삶도 뭐든 꽉 누르면 쓰기만 하겠구나, 하릴없이 생각했다. 모든 것에 밸런스가 중요하듯 밀도를 지키는 삶이 중요하겠다는 생각. 언젠가의 글에서도 썼지만, '언제 힘을 줄지' '어느 순간에 힘을 뺄지' 는 어쩌면 굉장히 중요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