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혼자가 아니면 둘이 될 수 없다. 별 의미 없는 얘기 같지만, 요즈음 자주 생각하는 것이다. 문이 열려야만 닫힐 수 있는 필연성을 갖는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귀하게 여겨야만 둘이 보내는 시간에도 더 공을 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딱히 혼자서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하는 사람으로 지내왔기 때문은 아니다. 확실히 가족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나는 웬만하면 혼자서 해내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지만.
혼자면 외로운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뭐 외로울 때도 있지, 하고 대답하게 되는 것 같다. 문득 쓸쓸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 외롭지는 않다. 혼자 하는 것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그 부족함으로 오롯이 채워지는 시간들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이후부터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어떤 공간에 혼자 있으면 주변의 상황과 소리에 조금 민감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가만히 있을 때 들리는 생활감이 느껴지는 조그마한 소리들을 듣는 것을 즐긴다. 조그맣게 켜 놓은 어딘가의 티브이 소리, 작은 선풍기가 날개를 파라락 돌리는 소리. 잠시 소리가 멈추면 또 가만히 적막감이 돌고,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켠다 치면 내가 올리는 볼륨대로 공간의 어느 부분이 소리로 동그랗게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하루 종일 중첩되는 소리들에 진을 빼고 돌아오더라도 혼자 식탁 의자나 책상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혼자 있는 순간을 조금만 가져도, 아 내가 여기에 있구나. 하는 감각으로 고요하게, 조용하게. 확실하게 돌아오게 된다. 길게 적었지만 혼자 멍 때리는 순간들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느긋한 시간에 대한 예찬을 적으려면, 사실 하루 종일 적어도 부족하지 싶다.
또 혼자가 좋은 건, 언젠가 좋은 것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할 때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어서가 아닌가 싶다. 이전부터도 직업상 혼자 식사를 할 일이 많았고, 혼자 여행도 자주 다녔기에 특별히 무언가를 혼자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맛있는 것을 혼자 먹을 때에는 다음번에는 같이 와야겠다. 하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좋다. 의외의 곳을 만나거나 혼자서 마음을 가득 채워서 돌아가는 여행지에서도 여긴 혼자가 아니어도 좋겠다, 생각할 수 있는 순간들을 만나는 것이 또 좋다. 둘이라서, 셋이라서 좋은 순간도 있겠지만 오롯이 혼자일 때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는 마음이 꽤나 애틋하고 따뜻해서.
혼자, 따로. 또 같이. 시간들을 흐르며 나는 또 씩씩하게 혼자 무언가를 하며 모양을 만들다가도, 가끔은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는 순간들을 즐거워할 것이고 소셜 게이지를 전부 비우고 돌아와서는 또 혼자 멍 때리며 느긋해졌다가 새삼 누군가와 보내게 될 맛있는 시간들을 그리게 될 것이다. 혼자던 혼자가 아니던, 그 순간들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고, 그 순간에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혼자였다가 또 누군가와 같이였다가. 그렇게 시간 위를 바지란히 걷고 싶다. 몇 년 후에, 그러니까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혼자'라는 주제에 또 어떤 문장을 더할 수 있을까. 이유 없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