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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Sep 24. 2022

집니다.

오늘도.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이런 간지러운 문장을 읊다가 깼다.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꿈은 늘 여러 가지 모양. 그중 한 조각을 붙잡은 채로 찢은 조각을 확인한다.

아침을 먹기에는 이르고, 두유 한 팩을 따서 마시고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비 예보가 없으면 자전거의 빗장을 푼다. 

최근에 달라진 점이라면 얄팍한 긴 소매가 이 시간에는 제법 서늘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루 중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 30초랬던가, 의미 없는 문장을 웅얼거리며 페달을 밟고 밟아 출근한 후

밟은 페달을 정리한 이후엔 온통 일 뿐이다. 퇴근 이후에도. 돌아오는 페달 소리에는 아직 아웃풋이 나지 않은 것들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이건 분명히 리마인드 해뒀었고, 이건 이런 선택을 했으면 안 되었고, 이 부분은 이렇게 돌려서 한 번 더 보았어야 했으며 등등. 종일 서서 일하는 몸보다 마음이 더 피곤한 달뜬 오후, 허물을 벗듯 커튼을 친 거실에 쓰러지면 가끔은 눈을 감고 기절할 때도 있다. 


불이 꺼진 거실에서는 작은 소음들이 들린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허기가 느껴질 즈음이다. 빠른 선택을 해야 한다. 나를 위해 무엇을 먹일지, 쌀을 씻는 것이 이득일지,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가 어떤 것들인지. 그럴 기력도 없다면 배달의 민 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기로에 놓이는 것이다. 누군가와 같이 무언가를 먹는 일도, 혼자 스스로를 챙겨 먹이는 일도. 점심이야 대애충 시간에 맞춰 밀어 넣으면 그만이지만 요즘의 저녁 즈음은 스스로를 챙겨 먹이기가 늘 힘이 든다.

가끔은 누군가가 해 준 밥이 먹고 싶다, 하고 웅얼웅얼 중얼거리기도 하는데, 다음날 출근 시간을 보면서 선택이 빠르지 않았음을 늘 후회할 때가 많다. 잠들기 세 시간 전에는 무언가를 먹어 소화시킬 것. 이렇게 단순한 조건을 지키기 어려운,

그런 가벼운 루틴조차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 있을 줄이야.



'우울증이래요.'

어렵지도 않게 나는 말을 뱉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나는 열이 나요, 같은 문장의 완성형으로. 참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10년 전의 나를 떠올린다. 마알간 얼굴의 내가 '나는 이제 완성되었어. 드디어 어른이 되었어.' 하는 얼굴로 해사하게 웃는 모습을 떠올린다. 빌어먹을, 아니다.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지금의 나를 모르겠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도, 왜 스스로 스스로에게 이런 대접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5개월 정도 약을 먹으면 좋아질 겁니다. 

이야기를 들은 후 계절이 두 번을 지났다.

나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과다한 인풋에 익사하기 직전에 와서야 숨을 끄윽끄윽 쉬었다. 

뭐든 열심히 하고 싶었다. 새로 시작한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잘하고 싶었다. 문제가 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문제가 되는 나날들에서 내가 나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은 알약 몇 알을 정해진 시기에 털어 넣고 호르몬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무력하게 초라하다니.


초라하다니, 까지 쓰고 잠시 빈 커서를 보았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괜찮으니까, 괜찮다. 괜찮다. 고 말하다가 결국 다 괜찮지 않은 거니까.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나는 이내 막막해진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내는 법을 잊었다. 내도 들을 사람이 있을까, 어느 날은 소금기 묻은 얼굴로 계단을 따라 꼭대기 층에 올랐다. 말을 잊은 사람처럼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황홀하고 고운 순간이었다.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아름다운 것만 있으면...' 하고 친구에게 농담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야 해. 꼭 아름다워야만 해. 그래서 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하고 생각해야만.





나는 말없이 카메라를 들었다. 예뻤다. 예쁘고, 아름다웠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순간이야,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 순간이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셔터를 누르면서 나는 언젠가 누구에게 '너를 위한 순간이 준비되어 있으니, 기꺼이 그 순간을 즐기라.'는 조언을 겁도 없이 해냈던 것을 떠올렸다.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바람이 불었다. 등을 돌리니 너른 산등성이까지 보이는 맑은 날씨였다. 그냥 오늘이었다. 누군가에게도 나에게도. 괜찮은 내일을 기대할 기력이 조금 떨어졌다고 해서, 오늘이 지지 않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지고 있었다. 울 기운도 내려놓은 채로 나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숨을 놓고 싶었던 오늘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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