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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바다 Oct 06. 2019

혼자서 가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혼자서 여행 가 본 적이 없다. 여행에 관한 책들만 잔뜩 보면서 꿈을 키웠다가 사그라뜨렸다.



어느 날 청량산에 갔다가 우연히 서울에서 혼자서 배낭 메고 온 내 또래의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분은 나름대로 한국의 명산을 정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산행한다고 했다. 길을 잃어버리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한 번은 길을 잃어서 해가 지도록 못 찾았는데 시골의 어른께서 잘 안내해주셔서 간신히 집에 도착한 적도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세상엔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하는 표정이 멋있어 보였다. 혼자서 산행하는 용기가 부러웠다.

스무 살 적에 혼자서 여행을 가려고 멋을 잔뜩 부렸었다. 긴 머리 나부끼며 어느 바닷가 기차역에 내려서 호젓하니 모래사장을 걷고 싶었다. 여행 중에 모르는 사람과 만나기도 하고 멋있는 사람이면 술도 한 잔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걱정으로 한 번도 못 갔다. 결혼해서는 애 키우고 사느라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 지금은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는데 선뜻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 여행 책에서 읽었다.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갔는데 잠깐 나왔다가 숙소를 잃어버려서 무섭고 외로워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이야기를.  그러면서도  왜 여행을 가는 걸까.

말이 통하지 않은 외국에도 혼자서 여행을 했다는데 다른 지방으로 혼자 여행하는 것이 무에 힘들까 한번 가 보리라. 첨성대에서 선덕여왕의 용기 있는 삶을 느끼면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첫 여행지는 너무 모르는 곳보다 조금 아는 지역이 낫다 싶어서 경주로 정했다. 경주라면 떠올리는 그림은 스무 살 즈음에 본 불국사가 다다.


유명한 관광지라서 안내판도 잘 되어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집과 너무 멀지 않은 곳이어서 그리로 정했다. 드디어 경주로 출발했다.


 배낭 속에 두려움과 설렘을 가득 넣어서 버스에 올랐다. 많이 힘들면 경주터미널까지만 갔다가 돌아와도 건진 것은 있다고 나의 결정을 다독였다. 잠깐 졸았던 사이 버스는 경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긴장되어 어깨를 다 펴지 못하는 무거운 마음에게 경주는 눈부신 햇살을 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시간부터 확인한 후 대충 동서남북을 훑어봤다. 터미널 앞에 오가는 사람들도 우리 동네 사람들처럼 낯설지 않고 그렇고 그랬다. 어깨가 약간 펴졌다. 역시 사람은 실천해 봐야지 마음만 먹고 미뤄왔던 시간이 아까웠다.

 택시를 탔다. 조금 가면 오른쪽으로는 천마총이 있고, 길 건너서 걸어가면 첨성대 석빙고 박물관 이렇게 차례차례 구경해보라고 기사님이 내릴 때 일러주셨다. 첨성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햇살이 나에게 속삭였다. 오감을 활짝 열고 경주를 느껴보라고 바 하고 람은 감미롭게 나를  다독인다. 곧 첨성대가 나오니 가만히 숨을 쉬면서 천년을 넘어서 보라고 하면서.

옛날 경주역

경주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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