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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바다 Nov 01. 2019

저녁에서 밤까지

마트 이야기

해가 많이 짧아졌다. 저녁 6시 퇴근길인데 벌써 어둑어둑해서 퇴근길 운전하기가 불편하다. 그런 와중에 근무 시간에 언짢은 일이 생겨서 마음이 무겁다.



항상 그렇듯이 이 또 사고를 쳤다.  표기 오류 상품이 잔뜩이었다. 매장에  진열까지 되어서 일이 더 복잡해졌다. 이미 팔린 것은 할 수 없이 할인으로 잡아야 하고  남은 물건을 모두 회수해서 고치는 작업을 해야 했다. 빨리 고쳐서 진열해야 하기에 다른 파트 직원들까지 동원해서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바쁘게 고쳐나갔다.

그런데 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해해야 하는데 언제나처럼 또 핑계를 대기에 나도 모르게 욱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참고 덤덤하니 고치는데 뭐 잘났다고 나섰을까, 빡빡하게 밀어붙였던 게 후회된다.



동료들이 너무 심했다고 뒷말을 하지나 않을까, 언젠가 나도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나이도 많은 내가 참을걸  젊 잔치 못 한 행동은  아니었을까, 이래저래 찜찜하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하고 크게 맘 먹지만 곧 불편한 심사가 된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나 혼자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혼란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직도 물밑이다.



라디오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나온다. 돈 맥클린의 '빈센트'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고흐의 고통에 비하면 이깟것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마음이 서걱거린다. 배철수 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실낱같은 마음을 올려놓는다.



저녁을 먹고 <생각 버리기 연습>이라는 책을 폈다. 마음이 뒤숭숭할 때는 이런 책의 도움을 받아서 생각을 버리고 싶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를 좋아해 주면 좋겠다는 응석을 부리거나 기대감을 가지는 것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준건 나니까 내가 나빴다. 어쩔 수 없으니 그만 잊어버리자. 약간은 위안이 되지만 뒤숭숭한 심사가 쉬 가시질 않는다.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미스티'라는 드라마를 본다. 고혜란이라는 뉴스 앵커의 이야기다. 주인공 역을 맡은 김남주의 연기도 대단하지만 그 캐릭터의 당참이 어마어마해서 정신이 번쩍 든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쳐 나가기가 힘든 정치 경제 쪽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의 비리를 파헤친다.

그것을 뉴스에 내기까지의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데도 강단 있게 이겨낸다.



같은 동료인데도 그녀의 업무의 이해 부족으로 수군거리는 사람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질타와, 아예 힘 있는 쪽으로 기울어있는 소인배 들의 시기도 만만찮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감정들을 무시하고 뉴스의 진실만 생각하는 자세가 부럽다.

높은 장벽 앞에서 주인공의 의연함이 나를 매료시켰다. 살랑이는 바람에도  심각해지는 내가 초라하다.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내 곁에서 서성이는 그녀의 대범함에 힘입어 잠시나마 강한 마음을 가져본다.



괜찮다.

오늘 지적은.

뒤에서 흉보는 것보다 잘한 일이다.

본인의 착오로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해야 앞으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런 지적은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의 배경이나 별난 성격 때문에 아무도 말을 못 했다.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내가 그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다.

나하나 욕먹으면 어떠랴. 어차피 세상사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잘했다고 하는 사람과 못 했다는 사람이 있을진대

이럴 때는 고혜란처럼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이제 개운하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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