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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바다 Nov 09. 2019

쫄지 마


처음으로 운전해서 출근하던 날이었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큰 도로로 진입하려니 겁이 났다. 도로가 자기들만의 점유물인 양 자동차들이 씽씽 지나가면서, ‘너는 들어오지 마!’ 하는 것 같았다.
‘지도 세금 냅니다요. 도로를 사용할 권한이 있습죠. 너무 그러지 마시요, 나도 좀 들어가자고요.’ 혼자 중얼거리며 겨우 틈새로 끼어들었다. 진땀이 났다


 그날 밤 퇴근길. 회사 앞에서 큰 도로로 들어가려고 깜빡이를 넣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저 멀리서 ‘내 앞길에 방해하지 말라’는 듯 빠앙~하면서 치타 같은 자동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떨렸다.



어릴 적 단체 줄넘기할 때 적절한 순간에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자꾸 망설여졌던 것이 생각났다. 여러 대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진입했다. 집에는 가야 하니까.


처음 한동안은 차선 변경 때 깜빡이를 넣고 미적거리다가 욕도 많이 먹었다. 어느 때는 속도를 늦추며 경적을 울려주는 따뜻한 사람도 있었다. 미안해서, 때로는 고마워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상대 차량이 앞에 있건 뒤에 있건.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이제는 사 년 차다. 남의 속도에 방해를 줄 만큼 어리바리하지 않다. 내 뒤를 바짝 붙어서 눈에 불을 켜고 오는 하이에나도 두렵지 않다.


사자같이 거칠게 지나가는 덤프트럭은 하루 일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가장처럼 측은하기만 하다. 그리고 고양이 눈처럼 나를 노려보는 자동차도 귀엽기만 하다.


추석 전날 장보기를 잔뜩 해서 퇴근했는데 아파트 주차장이 혼잡했다. 명절 쇠러 대처에서 온 차들이 많아서다.


 마침 한 자리가 있어 주차했다. 따라오던 차가 조금 기다렸다고 창문을 내리고 소리를 질렀다.
“밖에 대라고 밖에~개나 소나 차를 끌고 들어오네.”
나에게 한 소린지, 왜 그러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쳐다보는데 그 차는 지나가고 남자의 잔상만 남았다. 험악하게 인상 쓴 못생긴 얼굴과 더럽게 시끄러운 목소리.


장 보따리를 무겁게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때서야 대거리를 못 한 게 억울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매일 퇴근하고 와서 대는 내 집 주차장인데 왜 그러냐고 한마디 못 하고 바보같이 가만있었던 게 억울했다. 이중주차가 있어서 좀 꾸물거렸기로서니 일 분이 지났나, 이분이 걸렸나.


 나도 앞차가 주차할 동안 기다렸다가 지나왔는데. 뉘 집 손님인지 차인지 번호라도 봐 놓을 걸, 아니 바로 내려서 한마디 해 줬어야 했는데.


그날 밤 계속 내 속을 후벼 팠다.
추석날 친지들과 담소를 나누는 중에도 순간순간 그 잔상이 스쳐 갔다.


 소형차라서 함부로 그랬나. 외국 여행 갔을 때 그 나라는 못 사는 나라가 아닌데도 경차가 많이 눈에 띄었다. 조그만 가게 옆으로 주차해 놓은 경차가 앙증스러웠다.


거의 혼자 타고 다니고 경제적인 면도 좋고 여러모로 경차가 맞춤이라 생각해서 구매했는데. 아니, 아줌마라서 그랬나, 그 차에 내가 아닌 젊은 이삼십 대 남자가 앉아서 '뭐요?' 했으면 그 남자가 그랬을까.



 침체한 마음으로 추석이 지나고 연휴가 끝났다. 휴대폰으로 아침 뉴스를 보는데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쫄지 마 인생이 깔본다.’
 소형차라서 함부로 봤건 여자, 아니 아줌마라고 쉽게 보고 소리를 질렀건 너그럽게 풀기로 했다.


 만약 내 차가 외제 차였다면 사는 게 얼마나 힘이 들어서 저럴까 싶어 어여삐 봐주었을 수도 있다.


 또 아줌마라서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까 이해의 폭이 넓어야 하거늘, 졸아서 말도 못 하고 뒷북치고 제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게 못나서 부끄러웠다.
 이제 가볍게 어깨를 펴고 핸들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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