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바다 Apr 27. 2024

봄이 두 봉지

소심한 새댁이

 봄이다. 천지가  연두로 도배되고 있다. 육십 넘은 마음에도 설렘이 일었다. 들떠서 차려입고  나갔다
차창을 열고 감미로운 바람도 마시고 조금씩 자란 잎들도  보며 돌아다녔다.

예쁜 카페서 커피 한 잔 하고 싶었다. 혼자는 조금 뭣해서 휴대폰의 연락처를 죽 내려 봤지만 이 시간에 딱히 불러 낼 친구가 없었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라고 하지 않는가. 카페에 들어갔다.

삼사십 대 학부형인 듯 한 여자들, 연인인 듯한 남 여, 그리고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손주랑 딸과 같이 온 나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커피를 혼자 마시는데 자꾸 주위 눈치가 보여서 넘어가질 않았다.
음악도 잔잔하니 좋고  통유리라 바깥의 벚꽃  떨어지는 것도 보기 좋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다는 걸 아는데도 너무나 아는데도 마음이 불편했다.

전에 딸애와 같이 왔을 때, 빵이랑 음료가 남아서 싸달라고 하니 잔에 있던 커피를 일회용 컵에 넣어 주었다. 조금 남은 빵도 대충 위생비닐에 담아주면 될 텐데 투명 비닐에 정성스레 싸주던 기억이 났다.

 갑자기 급한 용무가 생긴 것 마냥, 반 정도 남은 커피랑 빵을 들고 가서 포장해 달라고 했다. 카페 여직원은 무표정으로 보더니 대답도 없이 물건을 옮겨주었다.

공원에 앉아서 꽃비를 맞으며 가져온 커피를 음미한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음률을 타는 듯이 살랑거리는 꽃잎이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기분 좋은 생각만 하려고 봄날 예찬을 과잉으로 하는데도 그 무표정이 자꾸 생각났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커피 포장해 달라니까 변덕스럽다고 그런 건가. 그냥 당당하게 말할걸, 너무 미안해하며 말을 하니 물러 보여서 그런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다른 얹잖은 일이 있었나.
 딸애와 왔을 때는 주말이라 복잡했는데도 웃으며 잘해주더니, 오늘은 평일이라 한산한데도 왜.

 나이 많다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소심한 편이라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고향의 노모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나이 들면 지레 삐꿈탄대이."
그럼 내가 나이 들어서 지레 눈치 보고 설움 탄다는 것인가.
오만가지 생각에, 나는 곧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

가라앉은 기분을 다스리려 한참 걷고 있는데
"새댁아~, 쑥 좀 사가라 삼천 원에 줄게." 하며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팔십은 되셨을까 한 할머니가 아니 어르신이 반갑게 웃으며 나를 붙잡는다. 길가의 조그맣게 좌판을 벌여놓았다.  
친정어머니를 본 것처럼 가시 돋은 마음이 누그러진다.
"내가 깨끗한 데서 캤다. 많으면 데쳐서 냉동실에 얼라놨다가 국 끓여 묵으라."
산다고 말도 안 했는데 벌써 봉지에 담는다.
새댁이 소리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달라고 했다
 "새댁아 달래도 사가라. 이천 원이다 한 줌 더 줄게."
라며 억세어 보이는 달래를 또 봉지에 담는다.

 어르신은 반 강제로 봉지 두 개를 떠 넘긴다. 잠깐 뜨악했지만 의욕 넘치게 부르는 새댁아 소리가 듣기 좋아서 봉지를 받아 들었다.

쳐진 마음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발걸음이 가볍다.
오천 원에 봄을 두 봉지 가득 들고 오는 새댁이는 신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부럽지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