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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Jul 08. 2021

오디세우스처럼 끝난 그들의 여행

영화 '트립 투 그리스'

10년 여정 끝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갔던 오디세우스처럼 두 남자도 10년에 걸친 여행을 끝낸다. 그리고 그들도 각자 고향에 도착한다. 2010년 '트립 투 잉글랜드'로 시작해 '트립 투 이탈리아'(2014) '트립 투 스페인'(2017)을 거친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던의 여행 영화 '트립 시리즈'가 '트립 투 그리스'(감독 마이클 윈터바텀)로 지난 10년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는다. 스티브와 롭의 엿새 간의 여행은 터키 아소스에서 시작해 그리스 이타카에서 끝난다. 오디세우스가 거쳤던 바로 그 길이다.


'트립 투 그리스'는 전작 3편이 보여줬던 형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두 남자가 여행지에 도착해 장소를 옮겨 가면서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그 아름다운 광경을 그대로 머금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호텔에서 잠을 잔다. 배우이자 작가인 스티브와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롭이 시덥잖은 농담, 영화계 뒷담화, 유명 배우 성대모사를 쉬지 않고 이어 가는 것 역시 전작과 다르지 않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이를 두고 "현악 4중주처럼 매번 형식은 유지하되 악상만 변형한다"고 했다.


지난 작품을 충실히 따라왔던 관객이라면 익숙한 포맷이지만, 이 시리즈를 처음 보는 관객에겐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리스의 멋진 풍경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여행지에서 벌어질 수 있는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도 없다. 스티브와 롭의 대화 역시 영화 마니아 정도는 돼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다. 유머 코드가 맞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코로나 사태로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고 대리 만족을 느끼라고 권하기에 딱 들어맞는 작품은 아니다.

그래도 '트립 투 그리스'엔 다른 여행 영화에 없는 게 있다. 바로 세월이다. 처음 잉글랜드를 여행할 때 40대 중반이었던 스티브와 롭은 이제 50대 중반이 됐다. 영화 형식은 처음 그대로이지만, 주인공 두 사람은 꽤나 달라졌다(나이를 먹었다). 이건 이 시리즈를 함께해온 관객 역시 함께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티브가 롭과 대화 도중 "난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져"라고 말하거나 롭이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대해 얘기하며 "10년은 너무 길다"라고 말하는 건 그들 자신과 관객 모두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


이 10년의 시간은 '트립 투 그리스'를 지배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챙겨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게 더 많아진 두 사람은 여행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스티브는 병환이 깊어진 아버지가 자꾸 신경쓰이고, 롭은 집을 비운 사이 자신에게 아무 말도 없이 저녁 약속을 나갔다는 아내가 마음에 남는다. 두 사람의 여행이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에서 끝이 나는 건 두 사람이 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갔기에 더이상 가족을 남겨두고 집을 떠나 여행할 마음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트립 투 그리스'는 이 영화 시리즈를 처음 보는 관객에겐 진입 장벽이 있어 온전히 즐기기 쉽지 않은 영화다. 다만 그간 두 남자의 여정을 꾸준히 쫓아온 관객에겐 특별한 작별 인사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와 롭의 말론 브란도 성대 모사, 톰 하디 성대모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해외에선 지난해 5월에 개봉했다. 국내에선 오는 8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03분.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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