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영화가 아니라 생명영화다

'윤희에게'를 다시 본 뒤 떠오른 것들에 관해

by 손정빈

<윤희에게>는 아류인가. 오래된 동성 연인의 이뤄지지 못한 애달픈 사랑을 그린다는 점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오르게 한다. 배경이 되는 일본 오타루와 눈은 '러브레터'의 그것을 소환한다. 짧은 사랑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어떤 인연을 다루는 건 마치 '비포 선셋' 의 설정 같기도 하다. 이렇게만 본다면 <윤희에게>는 앞서 관객 마음을 흔들었던 영화들의 감성과 설정을 추출해 짜깁기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만약 이 작품이 오래 만나지 못한 과거의 동성 연인이 오타루의 눈을 배경에 둔 채 재회해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에 그쳤다면 이같은 의혹을 거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로맨스물의 외피를 하고도 사랑의 행방에는 관심이 없다. 못 다한 사랑을 완성하려고도,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추모할 생각도 없는 듯하다. 한 때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20여 년 만의 짧은 만남 이후 그저 각자 인생을 산다. <윤희에게>는 어딜 향하고 있나.


이건 마치 생명에 관한 영화 같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옛 연인 쥰과 윤희는 "가끔 네 꿈을 꿨다" "가끔 네 생각을 했다"고 할 뿐, 로맨스 영화의 흔한 대사처럼 '보고싶었다'거나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 이야기를 한다. 쥰은 "너를 만난 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윤희는 쥰과 이별 이후 시간에 대해 "여분의 삶은 벌이었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며 살았다"고 한다. 다른 말 같지만 의미는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는 건 내가 다른 사람이 돼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여분의 삶이었는데 벌까지 주며 살았다는 건 네가 떠난 뒤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살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날 다시 살게 한 네가 내 삶에 없다는 건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는 것. 네가 없는 삶이 벌인 이유는 그것이 네가 준 삶이라서다. 이건 절절한 마음을 빗댄 수사(修辭)가 아니다. 이별 이후 20년 간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내린 인생에 대한 평가다. 20여 년 전 두 사람이 함께했던 찰나가 함께하지 않은 세월의 생사를 결정했다. '오래된 사랑'이라는 단어로 한정할 수 없는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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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에서 눈은 낭만적 배경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눈을 물의 다른 형태로 본다면, 그건 생(生)의 상징처럼 보인다. 윤희의 세계는 그래서 메말라 있다. 그가 사는 한국 어느 지방 도시의 겨울은 눈 한 번 오지 않는 건조한 계절이다. 수분이라곤 없는 듯한 아스팔트 거리 위 말라버린 나뭇가지와 무심한 아파트 사이에서 담배를 태우는 윤희는 곧 바스라질 것만 같다. 반면 쥰은 감당할 수 없는 습기에 갇혀 있다. 그가 사는 일본 오타루의 겨울은 눈을 쏟아붓는 계절이고, 쥰은 눈 속에 파묻혀 그곳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고모가 "눈은 언제쯤 그치려나"라고 말하자 그는 "그치려면 멀었다"고 말한다. 쥰은 눈 속에 유폐돼 담배를 피운다. 사랑을 잃은 뒤 한 사람은 삶의 물기를 모두 쥐어짜냈고, 다른 한 사람은 삶을 물 속에 쳐박았다. 물이 부족하면 고통스럽고, 넘치면 아프다. 그래서 윤희는 고단하고, 쥰은 두통에 시달린다. 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이후 삶에 관한 이야기다.


윤희와 쥰은 여전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해 만난다. 겉에서 보면 윤희의 오타루행(行)은 쥰이 윤희에게 써놓고 보내지 못한 편지를 쥰의 고모가 몰래 부치고, 그 편지를 윤희의 딸이 우연히 보게 되면서 벌어진 결과물 같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윤희와 쥰은 이미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 있었다. 마침 그들은 옛 사랑을 갈라놨던 것들에서 해방됐다. 윤희를 정신병원에 보낸 부모는 죽은 듯하고, 남자를 소개하며 억지 결혼을 시킨 오빠와도 사실상 절연한다. 그 남자와는 이혼했고, 오빠 소개로 다녔던 직장은 관뒀다.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딸은 곧 대학생이 돼 품을 떠난다. 윤희는 마치 쥰을 알기 전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던 삶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메말라 죽어있을 이유가 없다. 쥰은 자신을 오타루에 쳐박았던 아버지가 죽은 직후 윤희에게 편지를 썼다. 쥰을 속박하는 것 역시 없고, 더는 눈 속에 갇혀 살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은 20여 년 전 그때처럼 또 한 번 생명을 얻기 위해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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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는 윤희와 쥰이 만나는 장면을 최대한 간소화함으로써 결정적으로 로맨스 영화가 아닌 곳으로 도약한다. 이 재회에는 20여년 만에 그들이 다시 보게 됐다는 것 외에 어떤 정보도 없다. 상대 이름을 애태워 부르지 않고, 예전 그때처럼 만져보지도 않는다. 다시 사랑을 시작해보자며 속삭이지도 않는다. 윤희와 쥰은 그때 그 시절처럼 그저 짧게 만난 뒤 헤어져 각자 생활로 돌아간다. 다만 이번 이별은 예전과 달리 외부의 힘이 내린 결론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가 내린 결정이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를 통해 얻은 생명을 다시 빼앗기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 윤희는 건조하기만 했던 그의 세계에 그렇게 물길을 낸다. 쥰은 축축한 세계에 햇살을 허락한다. 윤희는 평생 산 도시를 떠나 서울로 가 혼자 힘으로 직장을 구하며 새 삶을 시작한다. 쥰은 하늘을 보며 "눈은 언제쯤 그치려나"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똑같이 "내 삶이 부끄럽지 않다(않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렇게 윤희와 쥰은 새 생명을 얻는다.


<윤희에게>는 아류인가. 그렇지 않다. 몇몇 영화들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나 그런 작품들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찬미하고 사랑 그 자체를 예찬했던 것과 달리 <윤희에게>는 사랑을 소재 삼아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기어코 나아가는 이들을 지지한다. 윤희가 젊은 시절 쓰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윤희의 딸은 '인물 사진은 왜 안 찍냐'는 물음에 "전 아름다운 것만 찍거든요"라고 답한다. 그랬던 딸이 오타루의 눈 위에서 담배를 피우는 엄마를 카메라에 담은 뒤 말한다. "이쁘다." 엄마의 과거를 다 알진 못해도 엄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걸 짐작하고 있는 딸은 사진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을 보낸다. 딸의 이름은 '새봄'이다. 윤희와 쥰은 그렇게 겨울을 끝내고 봄으로 간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윤희가 이력서를 제출하기 위해 어느 식당 문 앞에 선 모습이다. 문에는 봄볕이 들었다. 긴장되지만 윤희는 이제 그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다.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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