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테니스는 상대와 1:1 또는 2:2로 시합하는 스포츠 경기이다. 테니스의 규칙은 정말 복잡하지만, (대한테니스협회의 테니스 룰은 200페이지가 넘는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상대보다 한번 더 상대의 코트에 공을 넣으면 이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넓은 상대방의 코트에(그런데 나는 왜 자꾸 볼을 아웃시키는가) 상대방이 치기 쉬운 공을 넘기면, 상대는 손쉽게 공격의 기회를 얻고, 나는 손쉽게 점수를 잃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낮고, 빠르게, 상대방이 받아치기 힘든 큰 각도로, 라인에 근접하게 치는 게 포인트를 얻는데 유리하다. 4포인트로(15-30-40-게임) 한 게임을 얻게 되는 테니스 경기에서, 한 포인트 한 포인트는 굉장히 소중하다. 극도로 긴장한 선수들에게(프로와 아마추어 선수 모두) 공의 아웃 여부는 경기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세계 4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는 각각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중 프랑스 오픈은 흙으로 만든 클레이 코트와 함께 공의 아웃 여부를 검증해주는 '호크아이(Hawk Eye)'라는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 오픈에서는 자주 판정 시비가 일어나며, 많은 관객들은 판정 시비도 하나의 전통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수십억 원의 상금과 그에 비할 수 없는 명예가 걸린 선수들의 입장에서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판정이다.
2021년 프랑스 오픈 여자 단식 4강. 크레이치코바와 사카리 경기였다. 3세트 8:7로 앞서고 있던 크레이치코바가 사카리의 서브 게임에서 30:40으로 이기고 있었다. 한 포인트만 얻으면 결승전으로 갈 수 있는 매치 포인트! 사카리가 친 공은 라인 근처에 떨어졌고, 선심은 '아웃!'을 외쳤다. 이대로 끝나면 크레이치코바의 승리였다. 하지만, 높은 의자에서 내려온 체어 엄파이어는 흙바닥에 공이 스친 자국을 확인 후 '인!'으로 바꾸었다. TV 중계 화면으로 확대해서 봤을 때는 아웃이 맞는 판정이었다. 결과적으로 크레이치코바가 승리를 했기 때문에(게다가 2021년 여자 단식을 우승했기 때문에) 단순한 논란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테니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오심으로 남을 뻔했던 사건이었다.
동호인 경기에서도 라인 시비는 비일비재하다. 내가 만난 동호인 대부분은 신사 스포츠인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답게 개인적인 삶이나 경기 모두 굉장히 신사적인 분들이었다.(이런 분들 덕분에 테니스를 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어떤 분들과의 시합 중에는 나 자신의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분명히 선 안에 들어온 공임에도 불구하고, '아웃!'을 외치기 때문이다. 심판이 없고, 옆에서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이 판정에 관여하지 못하는 동호인 경기에서, 그런 오심을 남발하는 상대방의 의견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상대방의 파트너이다. 양심 있는 상대방의 파트너 덕분에 나의 소중한 한 포인트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가끔 양심의 선을 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오심 또한 경기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며, 나는 다음번에도 라인에 떨어지는 멋진 샷을 날릴 것이다.(혹은 날리고 싶다...)
P.S. 행여라도 저의 미스 콜로 피해를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전혀 고의성이 없는 노안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이해해주시길 바라며,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