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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그렇듯이, 나처럼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에게도 기복이 찾아온다. 실력적인 기복은 늘 느끼는 감정이라 어쩔 수 없지만, 테니스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기복은 1년에 한 번 정도씩 찾아오는 듯하다. 이런 기복을 일명 테태기(테니스 권태기)라고 부르는데, 동호인들 사이에서 적지 않게 사용되는 걸 보면, 비단 나만 겪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테태기가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의 경기를 하거나 랠리를 하면서 느끼는 나의 육체적/정신적 한계, 테니스를 대체할 만한 다른 관심사가 생긴 경우, 아니면 그냥 재미가 없어졌거나 정도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테태기가 왔을 때 극복했던 방법은 대략 세 가지 정도였다. 첫째, 잠깐 동안 테니스 치는 것을 멈춰서 운동하고 싶은 욕구를 최고치로 만든 후 다시 테니스를 치는 방법(단, 다시 운동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으면 테니스를 그만두게 된다는 위험 부담이 있다.), 두 번째는 평소에 갖고 싶었던 테니스 용품을 구매해서 계속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내 마음을 채찍질하는 방법(단, 다음 달 카드 명세서를 보면서 자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냥 계속 치는 방법이다.
최근 들어 다시 테태기가 찾아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다. 혼자서 그 넓은 코트를 커버하기 어렵다는 점과 많지 않은 코트를 단식 게임으로 허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동호인 테니스 경기는 복식경기로 진행된다. 난 항상 그냥 즐기면서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인데, 복식경기를 하다 보면 나의 파트너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욕심이 생기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힘이 들어가면 제대로 된 스트로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실수가 많아진다. 더 잘하기 위해서 더 못해지고, 이기기 위해 지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프로 테니스 선수와 내가 게임을 한다면 그건 누가 봐도 당연하게(늘 항상 내 편인 귀염둥이 딸 마저도), 상대편의 승리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동호인 사이에서도 그 실력 차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라켓에 볼을 맞추는 모습을 대여섯 번만 봐도 거의 대부분 알 수 있다. '아, 나보다 실력자구나'
하지만, 그 실력차가 조금은 이상하게 변하게 된다. 일반적인 복식경기의 경우 1+1이 2가 될 수도 있고, 3이 될 수도 있으며,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상대적인 이유에서 생겨난다. 상대 팀의 컨디션이 매우 좋아서 평소에는 어림없는 공이 넘어오거나, 라켓 테두리에 빗맞은 공이 코트 안으로 떨어지거나, 네트에 맞은 공이 넘어오거나, 또는 주중에 회사 팀장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파이팅을 외치며 푸는 경우 상대방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건너 건너 알고 있는 어떤 분은 본인이 지고 있는 경우 일부러 라켓을 던지고, 심지어 부수며 상대를 일부러 위축시킨다고 한다. 물론 그런 행동은 신사의 스포츠답게 굉장히 많은 테니스 매너에 어긋나는 일이고, 금전적으로 많은 부담이지만(그분은 꽤나 부자라서 다행....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실제로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이와는 다른 이유로 테니스는 상대성이 있는 운동이다. 상위 랭커인 A와 하위 랭커인 B가 상대편이 되고, A의 파트너 C, B의 파트너 D는 비슷한 실력의 중위권인 경우다. 누가 봐도 A-C 페어가 이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A는 B에게 늘 맥을 못 춘다. 객관적인 실력으로는 B가 뒤지지만, B는 이미 A의 경기 운영 스타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A의 실수를 유도하기 위해 B는 열심히 뛰고, 열심히 공을 네트 너머로 넘긴다. A는 점점 더 어렵고 강한 공을 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실수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점수를 헌납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A가 모를까? 당연히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개인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경기 스타일도 다르고,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
과학이 발전하고, AI가 판을 치는 세상이 오면 테니스 동호인의 상대성 이론을 명쾌하게 풀어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 형이 무덤에서 일어나 해결해 줄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