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로 나라 경제는 엉망이 되어 있었고, 아직도 정치에 맞서는 의기로운 대학생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았으며, 여야 정권이 최초로 교체되어 신임 대통령이 막 임기를 시작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과 다르게 봄꽃이 파릇하게 솟아날 준비를 하고 있는 캠퍼스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큰 굴레를 벗어버린 신입생에게 하루하루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명목을 일부러 만들어 매일 술에 쩔어 있었지만, 그 자유로움이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고등학교 시절 적어둔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는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었고, 그중 하나는 '테니스'였다. 공대생이었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과 선배들이 없어서 동아리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고, 테니스 동아리는 무슨 배짱이었던지 다른 동아리처럼 적극적으로 신입 회원을 받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테니스를 배우고 싶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취해있던 시간을 제외한 몇 안 되는 맨 정신이었던 시간에 공대 건물 뒤편에 있는 테니스 코트에 직접 가보기로 한다. 흙먼지가 날리는 코트 앞에는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파란색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보인다. 쭈뼛거리며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네다섯 명의 2학년 선배들이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다가 나를 바라본다. 신입생이라는 신분을(대략 1학년 1학기까지는 어떤 실수도 용납되고, '난 몰라' 어법도 쓸 수 있다.) 밝히고, 동아리 가입이 가능한지 묻는다. 본인이 부회장임을 밝힌 2학년 선배는 회원 가입 용지를 주며 전공과 사는 곳을 묻고, 훈련시간, 회칙 등 동아리 운영에 대해 너무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렇게, 내 테니스 인생에서 가장 되돌리고 싶은 30분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흔한 말로, 부회장 누나에게 '찍힌' 순진한 신입생이었던 나는(믿기 어렵겠지만, 남중 남고를 졸업한 나는 대학교 때까지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 채 2주도 되지 않아 '012486'이라는 숫자를 서로의 삐삐에 남기는 사이가 된다.
부회장 누나는 공부도 잘하고, 테니스도 열심히 치고, 술도 잘 마시는 '악바리'였고, 동아리 내에서 '여신급'으로 통하고 있었다. 이런 '부회장'이라는 든든한 백을 얻었지만, 나는 신입생으로서 아침 일찍 코트 브러쉬, 롤링도 하고, 동아리 컨테이너도 열심히 정리한다. 술 먹는 횟수도 줄이고, 수업이 끝나면 5시까지 기다렸다가 훈련도 열심히 참가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테니스 스윙 자세만 한 달간 가르쳐주며, 공은 전혀 만져볼 기회조차 없었다. 아, 선배들이 친 박스 볼은 함께 주웠으니, 아예 만져보지도 못한 건 아니었다. 첫 달은 포핸드 스윙 동작을 '준비-하나-둘-셋-넷'으로 나눴다면, 둘째 달은 '하나-둘-셋', 셋째 달은 '하나-둘'로 줄어들 뿐이었다.
잘못된 만남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 100일간 쑥과 마늘을 먹었다지만, 이미 사람인 나는 그렇게 테니스 스윙 연습만 세 달을 하다 보니, 테니스에 대한 열정도 식어가고, 처음부터 잘못 꿰어졌던 부회장 누나와의 관계도 정리하게 된다. 사람도 테니스도 마음에서 멀어지니, 집보다 더 자주 머물던 동아리에 가는 시간도 줄어든다. 결국 호기롭게 시작한 내 테니스의 시작은 불과 3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테니스의 시작은 허무하게 끝이 났지만, 마음속 깊은 상자 속에는 늘 항상 '테니스'라는 운동을 고이 접어 넣어 두고 살았다. 그러나, 치열한 20~30대를 지내면서 테니스를 배울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건을 갖기는 쉽지 않았다. 드디어, 조금의 여유가 생긴 40대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테니스는 쉽게 늘지 않는다. 원래 배우기 쉬운 운동도 아닌데, 이제는 신체 나이도, 운동 신경도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늘 항상 그 시절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20년 전으로 돌려 '테니스 여신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포핸드 자세 연습을 한 달만 더 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