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속에서
"난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어."
혼자 남겨진 집 안은 너무도 컸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가족이 없었다. 미정은 머릿속에 여러 번 돌던 생각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시댁이 너무 힘들었어.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어.' 이혼 전, 그녀는 시댁 문제로 인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모든 걸 끊어내고 자신을 지키려 했던 결정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너무나도 늦게 깨달은 것이다.
남편은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러 갔다. 미정은 홀로 남겨졌다. 전업주부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녀에게는 남편이 주는 안정감과 아이들의 존재가 전부였다.
남편과의 싸움이 잦아지면서, 그녀는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혼하면 자유로워질 거야. 더 이상 시댁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 그러나 현실은 그 기대와 너무나도 달랐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제 곧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들은 부모가 헤어진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 역시 변화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눈빛에서 불안과 서운함을 읽을 수 있었다.
이혼 후, 미정은 경제적인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전업주부로 살았던 시간 동안 자신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던 탓에, 이제는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력도, 재능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남편의 지원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매일 밤,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구인 사이트를 뒤적였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했다.
미정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그가 시댁과의 갈등 사이에서 중재하려 했던 노력들도 떠올랐다.
당시에는 남편이 충분히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느껴 섭섭했지만, 이제 보니 그는 나름대로 애썼다. 그녀는 그걸 받아들이기보다는 끝내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가 지금의 외로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더 나은 삶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더 나은 관계를 원했고, 평온한 가정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고, 남편에게도 충분히 의지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렸던 것이 큰 실수였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러나 미정은 안다.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홀로 서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더 이상 남편에게 의존할 수도, 과거의 안락함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새롭게 삶을 시작해야 했지만, 그 과정은 너무도 막막하게 느껴졌다.
한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전부를 바쳤던 미정.
하지만 그 가정이 무너지자, 자신이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현실이 그녀를 짓눌렀다. 과거의 결정이 이렇게 큰 후회를 남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후회 속에서도 어떻게든 나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다.
미정은 창문 밖을 내다보며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정말… 돌이킬 수 있다면, 더 많은 걸 노력했을 텐데."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시작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