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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May 11. 2018

모얄레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1

 마침내 나이로비를 떠나는 날이 밝았다. 사파리 투어를 떠나기 전 에티오피아 비자는 미리 받아놓았으며 국경마을 모얄레(Moyale)로 가는 버스도 예약을 해두어 크게 걱정되는 것은 없었다. 다만 최종 목적지인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 3박 4일간 이동해야 할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국경마을인 모얄레까지 가는 버스는 밤 8시에 출발하며, 12시간을 달려 아침 8시에 국경에 도착하는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국경이 열리자마자 걸어서 에티오피아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나이로비에서 끝내야 할 일이 많았기에 비교적 오래 머물렀다. 사파리 투어에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같은 숙소에서 지냈으며 같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같은 길을 따라 같은 카페에 가서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일을 끝내는 동안 여행은 잠시 버려두고 매일같이 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숙소를 떠나는 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체크아웃을 하며 숙소 주인에게 큰 배낭을 버스시간까지만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버스시간까지 시간이 꽤 남아 평소처럼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굳이 지도를 보지 않아도 카페로 가는 길은 익숙했다. 카페에 다다르고 항상 지키던 자리로 가서 앉자 선하고도 조금 바보 같은 미소를 짓는 남 직원이 내게 인사했다. 올 때마다 내 담당을 맡던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와 인사하고 해가 거의 저물어갈 때까지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다. 버스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나는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해가지기 전에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그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전했다. 나는 이제 케냐를 떠나 에티오피아로 가노라고 말하자 그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나는 친구와 주먹을 한 번 맞대고 난 후 카페를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어쩐지 나이로비의 커피 맛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숙소로 돌아와 맡겨두었던 짐을 되찾으며 주인에게 인사했다. 밤만 되면 숨어있던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기어 나오고 자고 일어나면 온 몸이 빈대에 물려있는 것만 빼면 편안하게 잘 머문 숙소였다. 나는 주인에게 그동안 편안하게 잘 지냈노라고, 그리고 나는 케냐를 떠나 에티오피아로 간다고 인사했다. 주인은 너털한 웃음을 크게 한 번 지어 보이고는 내게 안전한 여행을 빌어주었다.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왔다. 아직 태양이 모습을 완전히 감추지 않아 햇살이 노래질 때 즈음이었다. 이제는 나이로비에 꽤 적응이 되었는지 ‘배낭 메고 다니는 아시안’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처음처럼 마냥 두렵지는 않았다. 숙소에 바로 붙어있는 식당을 지날 때 입구에 서있던 경비가 내게 떠나냐고 물었다. 항상 아침과 저녁을 먹으러 갔던 식당이었다. 내가 그에게 “네, 에티오피아로 가요”라고 대답하자 잘 가라고 인사하며 주먹을 쥐어 내밀었다. 나도 오른손 주먹을 살짝 쥐어 기다리고 있는 그의 주먹에 갖다 대며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가던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길거리에서 좌판을 깔고 옷을 팔던 노점상이었다. 그는 항상 이 거리를 쏘다니는 나를 보아왔는데 어느 날 배낭을 메고 떠나는 행색을 하니 말을 건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환하게 웃으며 잘 가라고 인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무서워하고 두려워 벌벌 떨던 케냐 나이로비 길거리에 어느덧 친구들이 생겨있었다. 어쩐지 조금은 더 마음을 열고 도시를 바라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잠깐이나마 마음을 스쳐갔다.  



 내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어느덧 해가 거의 저물어가고 있었다. 태양은 마지막 몇 분 사이로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추어버렸고 어느새 터미널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모얄레로 오가는 버스에는 상인이 많이 타는 듯했다. 다들 짐을 몇 포대자루씩 들고 와서 그것을 버스 위로 엄청나게 높이 쌓아 올렸다. 나는 이렇게 높이 쌓아 올리고 가다간 커브를 급하게 하거나 바람이 세게 불어 닥치면 버스가 전복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됐다. 트렁크에는 배낭 하나 넣을 자리를 찾기 힘들었는데, 짐 올리는 인부에게 내 배낭도 넣어달라고 채근하자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버스로 오르는 것이 보여 나도 그들을 따라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출입문 바로 옆자리였는데 다른 자리에 비해 꽤 넓고 편해 보이는 자리였다. 이윽고 버스는 사람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다. 뒤를 살짝 돌아보자 전부 흑인이었고 동양인, 아니 여행자는 나뿐이었다. 일단 버스에 몸을 싣고 나니 두려움이 가라앉으며 피곤이 몹시 몰려왔다. 그동안 글 쓴다며 카페에 앉아 주구장창 커피만 마셨더니 밤마다 잠을 설친 탓이었다. 나는 잠시 잠들었다가 버스가 멈추는 느낌에 눈이 떠졌다. 창 밖을 보니 버스는 어느 길가에서 멈추었는데 과일을 파는 좌판과 물과 음료를 파는 작은 슈퍼마켓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화장실도 없어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져 서로를 등지고 소변을 보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소변을 보고 나와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보았는데, 한 남자가 찐 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껍질도 까지 않은 채 그대로 찐 옥수수가 하나에 400원, 마침 케냐 돈도 조금 남았고 배도 고파서 하나 사서 맛있게 먹었다.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나서 버스는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밤새 앉아있으려니 엉덩이가 눌려 통증이 느껴졌다. 자세를 고쳐 잡아보아도 불편했으며 너무도 피곤한 탓에 속이 울렁거렸다. 버스는 새벽이 되어도 중간에 한 번씩 길가에 멈추었으며 사람들은 내려 소변을 보기도 하고 이슬람 신자들은 돗자리를 깔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12시간을 넘게 달린 버스는 아침 8시가 조금 지나 마침내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국경마을인 모얄레에 당도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호객이 달라붙어 정신없이 말을 걸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조롱이었다. 나는 긴장한 채로 낯선 도시에 이르자마자 그런 것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게다가 밤새 뒤척여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무척이나 예민해있는 상태였다. 배낭은 몹시도 무거웠고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나는 그나마 순해 보이거나 내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길을 물으며 케냐 출국심사대로 찾아갔다. 심사관에게 여권을 주고 지문을 네 번 찍으니 너무도 간단하게 출국 절차가 끝나서 바로 건물을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걷던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잠시 후 앞으로 길게 뻗어있는 길 중간에 기다란 철조망이 길을 가로로 싹둑 가르고 있었으며 구석에 자그마한 철문이 하나 있었다. 철문은 활짝 열려있었으며 지키는 사람은 없었고 몇 사람들이 그곳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철문을 넘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그러다가 옆을 보니 군인이 앉아있어 나는 그에게 다가가 “지금 여기가 어딘가요?”라고 물었는데 그는 “에티오피아요”라고 대답했다. 세상에, 아까 넘어온 그 기다란 철조망이 국경선이었고 철문이 에티오피아로 가는 출입구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여권검사 한 번하지 않고 에티오피아에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이어서 물었다. “입국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그리고 그는 턱을 삐쭉 내밀며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의 턱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어울리지 않게 매우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후 건물로 들어갔다. 겉보기에만 컸던 건물의 내부는 그저 휑했으며 가운데에 입국심사대가 덩그러니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에티오피아 입국심사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보라색 체크 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가 “지금 전기가 안 들어와서 컴퓨터가 안 켜져요, 미안한데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자유로운 옷차림과 귀엽기까지 하던 표정 때문에 믿기진 않았지만, 그는 입국 심사관이었다. 지금껏 보아온 강압적이고 퉁명스럽기만 하던 입국 심사관과는 달리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앉아 전기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나저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입국을 할 수가 없다니, 에티오피아에 들어온 것을 실감했다.  


 나는 그렇게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는 기약이 없었으며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곧 들어올 거예요, 기다려주세요”뿐이었다. 나는 몹시 배고파 과자를 하나 꺼내먹었는데 푹푹 찌는 햇볕에 짜디짠 과자를 먹으려니 목이 퍽퍽 매여왔다. 페트병에 남은 뜨듯한 물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한두 번 먹으면 없어질 것 같았다. 입국심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배낭을 메고 어딜 나가서 물을 사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막 지날 무렵 입국 심사관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저쪽으로 올라가면 ‘에덴호텔’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식당이 있어요. 가서 밥 먹고 와요” 그가 건넨 이 말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전기는 언제쯤 들어올까요, 오늘 들어오긴 하나요?”라고 되물었는데, 그는 “확실하진 않지만 2시간까지는 안 걸릴 거예요”라고 말했다. 뜨거운 날씨에 인터넷도 되지 않아 나는 몹시 답답했지만, 그저 조용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가 말한 방향을 따라 올라가자 ‘에덴호텔’이 보였고 그 아래에 작은 식당이 딸려있었다. 말이 좋아 호텔이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식당에 들어가 앉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식당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식당 주인에게 메뉴를 달라고 했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능하냐 물었는데 그는 파스타를 해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무엇이라도 먹고 싶었고 파스타라면 괜찮을 것 같아 그걸로 달라고 말했다. 얼른 식사를 마치고 이 부담스러운 눈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식사가 나오기까지 사람들이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대었는데 나는 영어를 못하는 척하며 대부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결국 나를 폭발시킨 한 남자가 있었다. 식당을 지나치던 한 남자가 나를 보자마자 “차이나? 차이나?”라고 물었는데, 물론 이것은 한두 번 들은 말도 아니지만 왠지 그 남자에게 모든 화가 쏟아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남자에게 “그럼 넌 모잠비크 사람이냐?”라고 되물었는데 그가 “아니, 에티오피아 사람인데”라고 대답하길래 “기분 나쁘지? 나 중국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라고!”라고 따끔하게 성질을 냈다. 도대체가 흑인들은 동양인만 보면 중국인이냐고 묻는데, 그저 한심한 수준이다. 


 잠시 후에 주인이 식사를 가지고 왔는데 괴상한 것이 나왔다. 널따란 은색 쟁반 위에 넓이가 딱 들어맞는 탁한 색의 빵 같은 것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위로 삶은 면이 한 주먹 올라와있었고 소스가 따로 나왔다. 이 빵은 인제라(Injera)라고 부르는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인데, 원래는 널따란 빵 위에 각종 소스가 뿌려져 나오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하여 손으로 빵을 조금씩 찢어다가 소스를 찍어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파스타를 시켰기에, 빵 위에 면을 올려주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알려준 대로 소스와 면을 잘 비비고 난 후, 빵을 한 조각 찢어내어 파스타와 함께 곁들여 먹었다. 최악이었다. 나는 지금껏 여행하며 가린 음식이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고수’의 진한 향마저 좋아하기에 동남아를 가던 중국을 가던 인도를 가던 음식이란 음식은 전부 맛있게 먹으며 다녔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상한 요거트를 발라 숙성시킨 듯 이 시큼한 맛의 빵만큼은 다 먹을 수가 없었다. 파스타라고 나온 것도 어찌나 맵던지, 파스타라기보다는 따로 노는 매운 소스와 삶은 면이었다. 나는 면만 다 먹고 빵은 남겼는데, 사람들이 빵도 마저 다 먹으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내가 배불러서 도저히 다 못 먹겠다고 손짓하자 주인이 씁쓸한 표정을 있는 대로 표출하며 빵을 내갔다. 나는 정말, 도무지 이것을 다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물을 한 통 사고, 근처 은행에서 돈을 환전하고 다시 입국 심사장으로 돌아왔다. 은행에서 환전할 때에도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모얄레 전체가 정전인 모양이었다. 여전히 입국 심사장은 정전이었으며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 대충 세수를 했다. 온몸이 끈적거려 더욱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잠시 후 심사관이 전기가 들어왔다며 나를 불렀다. 이윽고 나는 에티오피아 국경을 넘은 지 4시간 만에 허무하도록 간단한 입국절차를 마치고, 마침내 에티오피아에 성공적으로 입국하였다. 


 나는 마을 쪽으로 걸었다. 에티오피아의 모얄레는 지금껏 봐온 그 어느 동네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롱이 심한 동네였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 전부 나를 보면 조롱을 했다. 동네 아이들이 내 주변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었고, 나를 지나치던 사람들은 “차이나?”, “칭쳉총”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놀려댔다. 지나가다 나를 본 여자들은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지르다가 눈이 마주치면 박장대소를 하는가 하면, 뒤에서 휘파람을 부르며 나를 끊임없이 불러댔다. 소름 끼치게도 몇 명은 내 이름을 알고 “정! 정!”이라며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배낭을 메고 이들의 이유 없는 조롱을 무시하며 걷자니 구토가 밀려올 만큼 거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길을 물어야 했기에, 나를 조롱하는 그들에게 다가가 “버스정류장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고, 그저 조롱만 할 줄 알았다. 그렇게 한참을 찾다가 나는 이 근방에서는 꽤 괜찮아 보이는 한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그들에게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버스를 묻자, 오늘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하루 묵고 다음날 새벽에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미리 알아두었던 정보와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곳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가격이 꽤나 비쌌음에도 간신히 잠만 잘 수 있는 그런 방이었다. 약하게나마 인터넷이 가능하여 하루 지내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불쑥 찾아오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이 날은 그게 특히나 심했다. 여행자들을 보면 혼자서도 즐거워하며 잘만 다니는 것 같던데, 나는 강한 척 하지만 사실 보면 마른 지푸라기마냥 한없이 약해빠진 인간이다. 아주 작은 정전기 한 톨에도 온통 불에 홀랑 타버리는 너무도 약한 인간이다. 낯선 이곳이 싫었다. 온갖 조롱과 시선이 지긋지긋했고 얼른 아프리카를 떠나고 싶었다. 한국사람이 그리웠다. 나와 같은 피부색이 보고 싶었다. 처절하게 고독하고 외로웠다. 나는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극도로 사람을 피하면서도 사람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방에 계속 있자니 너무도 외로웠고 그렇다고 호텔 로비로 나가자니 부담스러운 눈길과 귀찮은 대화가 싫었다.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밖으로 나가는 편을 택했다. 로비로 나가 야외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니 공기가 꽤나 서늘해져 차분한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하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밖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전부 안으로 들어갔고 오직 나만이 남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점차 거뭇거뭇해지던 하늘은 번쩍이는 불빛을 쏘아내더니 이윽고 세차게 비를 쏟아내었다. 대포가 터지듯 하늘이 번쩍이고 엄청난 굉음을 냈으며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던지 비가 이리 휘었다 저리 휘었다 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기쁨의 몸부림인지 분노의 포효인지 하늘의 뜻을 알 길이 없었다. 빗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며 어떤 존재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하늘의 굉음과 비의 춤사위에 집중했고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르는 듯 묘한 평온함을 느꼈다. 지금껏 여행을 떠나와 단 한 번도 비를 보지 못했다. 배낭여행하기에 비를 만나지 않은 것은 행운일 수도 있으나 마음 한편에서는 그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비를 보지 않고 마친다면 기록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결국 이렇게 세찬 비를 만나게 됐다. 나는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바닥으로 가라앉듯,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표현이 다채롭고 감성이 풍부한 책이다. 나는 비 내리는 음악을 들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튀어 오른 비의 잔재를 느끼며 오로지 글에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토록 퍼붓던 비는 이내 조용해졌으며 곧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더 이상 모기의 공격을 참지 못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새벽 5시, 나는 짐을 챙겨 나왔다. 밤새 또다시 정전이 된 모양이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한 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으며 휴대용 랜턴을 들지 않으면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한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왔다. 이 친구는 호텔 직원인데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기로 약속했었다. 나는 이 친구가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에 당연히 늦거나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이렇게 나와준 것이 그저 기특하고 고마웠다. 우리는 지나가는 바자즈(BAJAJ)를 잡아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새벽 공기는 몹시도 눅눅했으며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비하여 꽤 쌀쌀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버스터미널이 있어 우리는 금방 도착했고 호텔 직원이 저 버스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을 전체가 정전된 탓에 어둠만이 자욱한 그곳에선 빛나는 두 눈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으며 언제든 출발할 수 있다며 잔뜩 성이 난 듯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빛나던 두 눈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곳저곳 골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커다란 노인이 서있을 뿐이었다. 분명 어제 예약할 때는 크고 좋은 버스일 것이라고 했는데, 그러나 나는 금세 그들의 시선에서는 이것이 전성기 때의 헤라클레스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인정했다.  


 호텔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르려고 하는데 직원이 웃으면서 팁을 요구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무시하고 버스에 올랐겠지만 새벽부터 일어나서 터미널까지 도와준 것이 고맙기도 해서 몇 푼 안 되는 돈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난 후 버스에 올랐다. 첫눈에 보인 버스의 내부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이 버스 역시도 상인들이 가득한지 가빠천으로 무언가를 잔뜩 둘러 싸매 지붕이며 트렁크며 전부 쑤셔 박아 넣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버스 안으로 갖고 들어와서 머리 위에 달린 선반이며 의자 밑 공간이며 아무튼 보이는 모든 공간에 짐을 쑤셔 넣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움직이며 짐을 오르고 내리는 탓에 이들은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흘리고 있었으며, 그렇게 그들이 흘린 땀냄새와 새벽안개 냄새가 한데 뒤섞여 공기는 쾌쾌하고 눅눅했다. 옆에 앉은 친구가 이리저리 짐을 쑤셔 넣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내 발 밑의 공간까지 차지하려 들어 내가 힘으로 저지하자 조금만 양보해달라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였다. 그리하여 내 발 밑의 공간에는 내 가방도 하나 있어서 다리를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이들은 짐을 통로에까지 놓아 짐을 밟고 다니기에 이르렀다. 버스의 좌석 배열은 3 / 2 배열로, 인도 고락푸르에서 바라나시로 갈 때 12시간 동안 탔던 그 최악의 버스와 내부가 거의 흡사했다. 좌석이 90도로 고정이 되어 있는 것도, 앉았을 때 앞 좌석에 무릎이 닿는 것도 같았다. 믿기 싫었지만 나는 정말 이것을 타고 하루를 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정신이 없어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이어폰의 반대편 끝에는 아무것도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케냐에서 에티오피아로 넘어오고 인터넷이 끊겨버려 음악을 들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이렇게라도 이들의 정신없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차단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창 밖을 보며 진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들의 앙칼진 비명소리가 이어폰 사이를 마구 비집고 들었다. 나는 놀라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짐을 싣던 두 남자가 서로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내 짐작하건대 짐을 서로 구겨 넣는 과정에서 싸움이 붙었으리라. 그것을 보고 있자니 나는 앞으로 가야 할 여정이 더욱 긴장되고 두려웠다. 이토록 본능에 충실한 짐승 같은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꼬박 하루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잠시 후 새벽 5시 40분, 이윽고 버스는 대장정의 첫 발걸음을 떼었다. 국경마을 모얄레부터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는 774KM, 이동시간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마음을 내려놓고 가야 하는데 좀처럼 마음이 차분해지질 않았다. 비좁아 터진 공간에서 이들과 함께 가는 24시간은, 아무리 대중교통을 타고 사색하기를 즐기는 나라고 해도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나는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탄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거는 것이 너무도 귀찮아 나는 나오지도 않는 이어폰을 끼고 마스크와 안대를 착용했다. 아무도 말을 걸지 말아달라는 표시였다. 그렇게 나는 잠시 쪽 잠에 들 수 있었다. 



 얼마나 왔을까, 한 시간도 되지 않은 듯했다. 버스가 멈춘 느낌에 나는 잠에서 깨어 안대를 살짝 위로 걷어 올리고 창 밖을 보았다. 여전히 어두웠으나 저 멀리 산등성이 넘어서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하늘에 불그스름하고 노란 띠 여러 줄이 그어진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버스의 앞 유리를 통해 우리 말고도 다른 버스들이 보였으며 옆 유리를 통해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주변을 훑어보았는데 우리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절반은 밖으로 나가 있었다. 나는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화장실을 온 것인가, 하고 그저 앉아있었는데 잠시 후에 한 남자가 버스로 올라타서 전부 내리라고 소리쳤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가방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우리 버스 뒤로도 수십 대의 버스가 줄지어 있었으며 앞은 차단기로 길이 막혀있었다. 군인들이 버스를 한 대 한 대 검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만치 앞으로 가서 버스가 검문을 마치고 차단기를 통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만치 앞으로 가기 위해선 총을 든 군인들에게 몸수색을 받아야만 했다. 나도 몸수색을 받는 이들의 뒤로 가서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누군가 “차이나”라고 소리 지르는 소리에 쳐다보았더니 군인 한 명이 내게 그냥 지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줄을 벗어나서 몸수색받는 이들을 지나치며 군인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는 여전히 나를 지켜보며 그냥 가라고 다시 한번 손을 휘휘 저었다. 아무래도 내가 동양인 여행자라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검문을 마친 버스가 우리 앞으로 와서 나는 다시 버스로 올라탔다. 바닥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짐 때문에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의 짐을 밟고 이리저리 치워가며 힘겹게 자리로 가서 앉아,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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